‘아시아판 에어버스’ 출범의 꿈이 첫걸음을 뗐다. 한·중·일 등 아시아 국가들의 항공기 제조 역량을 합쳐 세계 시장의 판도를 바꿔보자는 구상이다. 지난 5월 처음 제안이 나왔을 때만 해도 항공업계 내부에서는 ‘아이디어 차원 아니냐’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 항공제조업계가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대는 등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에 꼭 필요한 사업”=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한항공, 한화테크윈 등 항공기 제조 기술을 보유한 국내 업체들은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관에서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아시아판 에어버스 구상의 실현 가능성, 사업성 등에 대해 검토하는 자리였다. 에어버스는 독일·프랑스·영국·스페인 등이 미국 보잉에 대항하기 위해 컨소시엄 형태로 1970년 세운 회사로 현재 세계 항공기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좋은 아이디어다. 한국에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의견을 모았고, 향후 수시로 간담회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날 모임은 전경련이 지난 5월 28일 한·중 CEO 라운드 테이블에서 아시아판 에어버스 구상을 밝힌 지 한 달여 만에 성사됐다. 당시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아시아 국가들이 항공기 제조 협력 시스템을 구축하면 보잉, 에어버스가 독점하는 시장에서 아시아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시장’ 중국이 관건=보잉이 지난달 11일 발표한 세계 항공기 시장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5∼2034년 아시아에 신규 도입될 여객기는 1만4330대로 예상된다. 이 기간 전 세계에 도입될 것으로 추산되는 여객기 3만8050대의 37.7%에 해당한다.
금액으로 따지면 향후 20년간 5조5700억 달러(6227조2600억원)의 글로벌 항공기 시장이 새로 열릴 것으로 전망됐다. 아시아 시장 일부만 선점해도 천문학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한·중·일 3국만 힘을 모아도 아시아판 에어버스의 기술경쟁력은 충분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중국과 일본은 이미 자체 기술로 민항기 생산을 앞두고 있다. 한국의 KAI는 군용기를 제작해 국내외에 공급하고 있고, 대한항공과 한화테크윈은 보잉, 에어버스에 핵심 부품을 납품하면서 기술력을 인증 받았다.
다만 거대시장을 쥐고 있는 중국의 입장이 관건이다. 중국은 폭발적인 여객 성장률을 기반으로 2034년까지 6000여대의 신규 여객기를 도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이 자체 항공기 제작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한다면 한·일과 굳이 손을 잡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전경련 관계자는 “중국의 항공업계는 물론 당국과도 접촉하면서 설득할 계획”이라고 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영업망을 확보하는 것도 필수 과제다. 항공사 관계자는 “유수의 민항기 제작사들이 영업망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규 사업자가 틈새를 뚫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아시아판 에어버스가 성공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단독] 美·유럽 독점에 맞서… ‘아시아판 에어버스’ 첫발 뗐다
입력 2015-07-02 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