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불평등] 돈이 돈을 버는 사회… 자산따라 ‘천지 差’

입력 2015-07-02 02:34

공부는 곧잘 했다. 1998년 소위 스카이(SKY)로 불리는 명문대에 입학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어학연수도 갔고 졸업 후엔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도 들어갔다. 연애도 하고 여행도 다녔다. 앞으로도 이 정도는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자신했다. 대학 동창인 최시연(가명·36·여)씨와 이진아(가명·37·여)씨의 20대는 이렇게 비슷했다. 직장인이 된 뒤 이씨 월급이 최씨보다 조금 많긴 했지만 삶의 방식을 가를 정도는 아니었다. ‘절친’인 두 사람이 함께 쇼핑하거나 여행할 때 소비 수준 차이로 인한 불편함은 없었다. 그러나 결혼 후 두 사람의 삶의 수준이 달라졌다. 두 사람 남편은 모두 연봉 1억원을 웃도는 고소득자다. 남편의 능력 차 탓이 아닌 셈이다. 원인은 ‘보유한 자산’의 차이였다.

최씨는 7년 전 결혼할 때 양가 부모님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했다. 남편과 최씨가 결혼 전 모아뒀던 1억여원에 5000만원을 대출 받아 전세로 신접살림을 꾸렸다. 아이가 생기고 일과 육아를 병행할 만한 위치에 전세를 얻으면서 대출은 1억원으로 늘어났다. 월 이자만 40만원에 가깝다. 집주인은 재계약을 앞두고 기존 보증금에 월세 40만원을 추가로 요구해온 상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자동차 할부금까지 포함하면 월 110만원이 금융비용으로 나간다. 육아 도우미와 어린이집 등에 월 200만원 넘게 든다. 은행 대출을 줄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식이나 펀드 등과 같은 투자, 별도 노후 대비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결혼 7년 동안 최씨 부부가 열심히 일하며 생활한 경제적 결과물은 대출 1억원을 포함한 2억원의 전세금이 전부다.

반면 최씨보다 2년 늦게 결혼한 이씨는 지방을 오가던 부모님이 서울 반포에 사둔 40평 아파트에서 바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빚 하나 없는 집을 가진 이씨 부부는 연 2억원에 가까운 소득의 3분의 1을 저축과 투자에 들이고 있다. 올 초 그동안 부부가 모아뒀던 1억5000만원을 들여 강남역 근처 오피스텔을 분양받았다. 요즘 젊은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숙박 형태인 에어비앤비로 활용해 월세 이상의 수입을 내기 위한 투자였다. 9000만원 정도 대출받았지만 월세 수입이 괜찮아 이자를 내고 남는다. 투자·저축하고 남은 소득은 매년 해외여행을 다니고 필요한 물건들을 소비하는 데 충분하다. 결혼 5년차 이씨 부부의 대표적 자산인 아파트는 재건축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가격이 올라 시가 20억원을 웃돈다.

◇소득 불평등보다 심각한 자산 불평등=한국보건사회연구원 남상호 연구위원은 최근 ‘우리나라 가계소득 및 자산 분포의 특징’ 보고서에서 국내 가계 단위의 순자산 지니계수(0.6014)가 가처분소득의 지니계수(0.4259)보다 심각하다고 분석했다. 지니계수는 소득이 얼마나 균등하게 분배되는지를 보여주는 지수(0∼1 사이)로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하다. 또 자산의 경우 상위 10% 그룹이 우리나라 국민 전체 자산의 43.7%를 보유하는 반면 하위 40%는 전체 자산의 5.9%를 보유하는 데 그쳤다. 이는 상위 10%가 전체의 29.1%를, 하위 40%는 13.4%를 차지하는 소득의 격차보다 훨씬 큰 상·하 격차다. 자산의 양극화가 소득보다 심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금융부채·자산 출발점 차이가 소득 불평등 더 키워=소득의 불균형보다 자산의 불균형이 ‘불평등 심화’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이유는 ‘출발점’부터 차이가 벌어져 있다는 데 있다. 부동산 급등이 심할 때 부동산을 가졌던 이와 가지지 못했던 이의 격차는 삽시간에 몇 배로 벌어졌다. 현재는 금융부채가 격차를 키우는 대표적 요인으로 꼽힌다. 이씨와 최씨의 사례에서처럼 부동산 등 실물 자산이 불균형하게 배분된 상태에서 집값 등으로 부채가 생긴 쪽은 이자비용 때문에 소득 수준까지 낮아진다. 부채가 미치는 영향은 소득이 낮고 자산이 적은 가구일수록 심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보사연이 지난해 발간한 ‘소득 불평등 심화의 원인과 분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 방향’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소득을 10분위로 나눴을 때 가장 높은 소득 구간인 상위 10%(10분위)를 제외한 다른 소득 구간에서는 부채로 인한 현금 유출이 자산 보유로 인한 현금 유입보다 더 컸다. 게다가 고령화시대에 소득이 줄어드는 노후시기 자산 불평등의 결과는 더욱 심각해진다. 남 연구위원이 각 연령이 자산 불평등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비교한 결과 45∼54세가 23%로 가장 높았고, 55∼64세(19.5%)가 뒤를 이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