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그리스] IMF·메르켈이 가장 큰 원인 제공자?

입력 2015-07-02 02:05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30일(현지시간) 베를린 총리관저에서 독일을 방문 중인 이사 무스타파 코소보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하던 중 고개를 숙인 채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 보치·블룸버그연합뉴스

구제금융 협상을 둘러싸고 역사상 그 어떤 연극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현대판 ‘그리스 비극’의 씨앗은 누가 뿌린 것일까. 경제 운용을 잘못한 그리스 스스로의 잘못도 있지만 그동안 유럽 전체의 긴축정책을 주도해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국제통화기금(IMF)의 잘못된 정책이 어쩌면 가장 큰 원인일 수 있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1일(현지시간) 시계추를 2010년 5월의 상황으로 돌려봐야 오늘의 상황을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출신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총재가 맡고 있던 당시 IMF는 그리스에 300억 유로(약 37조3000억원)의 구제금융을 지원키로 결정했다. 그런데 통상 IMF가 구제금융을 지원할 때에는 구조개혁 등을 통한 재무개선 요구와 함께 부채 탕감을 해주는 게 관례였다. 과도한 빚을 그대로 놔둘 경우 빚을 내 빚을 갚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33%에 달할 정도로 이미 과도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IMF는 그리스에 대해 부채 탕감을 해주지 않았다. 이유는 당시 메르켈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부채 탕감을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지고 있는 빚 가운데 상당 금액은 독일 및 프랑스 은행들이 채권을 갖고 있었는데 부채 탕감을 해줄 경우 자국 은행들이 피해볼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결국 그리스는 부채탕감 없이 구제금융을 지원받아 대부분을 빚을 갚는 데 썼다. 경제 회복에 필수적인 공공부문에 쓰인 돈은 구제금융 지원액의 채 10%도 되지 않았다.

인디펜던트는 “정치인들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부채 탕감을 해주지 않으면 그리스의 회복이 어렵다는 걸 뻔히 아는 IMF는 그런 걸 방치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과도한 긴축 요구로 그리스를 힘들게 했던 메르켈 총리가 지금까지도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아 협상이 난항을 겪어왔다고 분석했다. 특히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사실상 유럽대륙의 ‘의사결정자(decider)’로 자리매김한 메르켈 총리의 영향력 때문에 다른 나라들도 쉽게 반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메르켈이 주도한 유럽연합(EU) 차원의 긴축 정책으로 가장 피해를 본 이탈리아의 마테오 렌치 총리마저 메르켈을 두둔하고 있을 정도다.

아울러 이미 과도한 긴축 정책을 펴온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의 지도자들은 그리스가 이번 협상에서 ‘낮은 수준의 긴축’을 얻어낼 경우 자칫 자국민들이 반발할 수 있어 역시 메르켈 뒤에서 그리스를 옥죄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고 WP는 분석했다.

하지만 메르켈에게도 운명의 시간이 다가올 수도 있다. 유럽의 싱크탱크 GCFR의 율리안 라폴트는 WP와의 인터뷰에서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발생하면 결국 긴축정책의 실패를 의미하게 돼 메르켈의 유럽 내 리더십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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