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불평등] 재산세 비중 3% 불과… 정부 ‘富의 재분배’ 소극적

입력 2015-07-02 02:22
정부가 중산층 상한선으로 보는 연봉 5500만원 근로자는 월급을 한 푼 안 쓰고 6년 동안 모아야 서울에서 겨우 전셋집 한 칸을 마련할 수 있다. 주변에서 "뼈 빠지게 일해도 언제나 제자리"라는 한숨소리를 듣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면 금융자산이 10억원이 넘는 슈퍼리치는 5년 새 배 이상 늘었다. '돈이 돈을 만든다'는 말처럼 부동산 등 자산소득 격차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자산소득에 대한 정부의 재분배정책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궁극적으로 사회적 갈등과 더 큰 복지 지출을 부담하는 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국민일보는 3회에 걸쳐 우리 사회의 자산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지 짚어보고, 그 해결책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부(富)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장치 중 하나가 세금이다. 특히 종합부동산세 등을 포함한 재산세는 자산의 차이로 인해 부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체 조세 수입 중 재산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주요 5개 선진국(G5·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재산세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조세제도는 자산으로 벌어들인 돈에 대한 재분배 기능에 소극적이다.

◇재산세 비중 ‘고작 3%’=국회예산정책처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세제개편 동향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조세 수입 중 재산세 비중은 3.0%(2012년 기준)다. G5 국가 평균(7.0%)과 비교하면 4.0% 포인트 모자란다. 문제는 재산세 비중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G5 국가의 경우 재산세 비중은 1990∼2012년 1.6% 포인트(5.4%→7.0%) 증가했고 OECD 34개 회원국 평균도 0.7% 포인트(2.6%→3.3%) 확대된 데 비해 우리나라는 0.4% 포인트(2.6%→3.0%) 늘어나는 데 그쳤다. OECD는 지난 2월 발표한 구조개혁보고서에서 이런 점을 근거로 들며 한국이 재산세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영숙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관은 1일 “우리나라의 재산세는 다른 국가와 비교해 여전히 낮은 편에 속한다”고 말했다.

◇사각지대 놓인 임대소득세=월세 등 부동산 자산으로부터 생긴 소득에 대한 세금이 임대소득세다. 현재 임대소득은 과세 대상자조차 제대로 파악이 안 되는 실정이다. 통계청은 2012년 국내 2주택 이상 다주택자가 136만5000가구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했지만, 2013년 국세청에 주택임대소득을 신고·납부한 이들은 8만3000명(6.1%)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이지만 정부는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2000만원 이하 임대소득엔 3년간 비과세하는 등 임대사업자에 대한 혜택을 늘리고 있다. 당연히 관련 세금도 줄고 있다. 예산정책처는 이로 인해 올해 113억원, 2016년 128억원, 2017년 146억원의 세금이 덜 걷힐 것으로 추산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라는 조세 정책의 대원칙에서 벗어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부자 특혜 금융소득세=예금 이자, 주식 차익 등 돈을 투자해서 벌어들이는 수익에 대한 과세도 손봐야 할 곳이 많다. 우리나라는 현재 금융소득이 2000만원을 넘지 않는 경우 15.4%의 세율로 원천징수된다. 연 2%대의 저금리 추세를 반영하면 은행예금 등에 10억원을 예치한 고액자산가도 1000만원의 예금이 있는 이와 마찬가지로 이자 수익의 15.4%만 세금으로 부담하는 것이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금융소득은 오랜 기간 비과세 또는 저율과세로 사실상의 특혜를 누려왔다”며 “금융소득 2000만원 이상 소득자에게 일반 근로소득이나 종합소득처럼 누진세율(6∼38%)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주식 부자에 대한 특혜”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지난 5월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을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낮추는 내용을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반면 선진국들은 최근 소득 양극화 문제가 부각되면서 자본 이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추세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지난 2월 세제개편 안을 발표하면서 부부 합산 수입이 연 50만 달러(약 5억4000만원)를 넘는 가계에 대한 자본소득세 세율을 23.8%에서 28%로 4.2% 포인트 올렸다.

◇공제 투성이 상속·증여세=우리나라 상속세는 세율이 무거운 반면 각종 공제혜택이 많다. 현재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 국가 중 일본(50%)과 함께 최고 수준이다. 반면 기초공제, 기업상속공제, 배우자공제 등 각종 공제제도로 인해 실제 국가가 거둬들이는 세금은 전체 대상자 중 2%에 불과하다. 2009∼2013년 국세통계연보에 나온 상속세 결정현황을 분석한 결과 총 상속 146만건 중 실제 세금을 납부한 상속건수는 2만7000여건(1.9%)에 그쳤다. 상속재산이 10억원을 넘는 이들(3926건) 중에서 상속세를 면제받은 경우도 19.1%(749건)나 됐다. 이 때문에 상속세 면세를 축소하고 실효세율을 현실화하기 위한 상속세 공제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세종=이용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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