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대통령의 메시지

입력 2015-07-02 00:55

새누리당은 지금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민주자유당부터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거쳐 오는 동안 이 당에는 언제나 독보적인 차기 대통령 후보가 있었다. 노태우 정권에선 김영삼, 김영삼·김대중 정권에선 이회창, 노무현·이명박 정권에선 박근혜. 이 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대통령은 항상 ‘미래의 권력자’를 애써 견제하거나 조심스레 그 눈치를 봐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렇게 눈치 볼 대상이 없는 이 당의 첫 대통령이고, 새누리당 의원들은 처음으로 미래 권력의 우산 없이 현재 권력을 상대하고 있다.

그런 의원들을 향해 박 대통령은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는 자기의 정치 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겨냥한 이 말을 청와대는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유 원내대표의 철학과 노선이 박 대통령과 달랐던 것이다. 철학의 차이는 ‘죄송합니다’ 머리 숙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많은 의문점 남긴 ‘배신의 정치’ 발언

대통령의 말과 청와대의 설명에는 여러 의문이 남는다. 정치는 원래 자기 철학과 논리를 갖고 하는 것 아니었나? 철학도 논리도 없이 하는 정치가 더 문제 아닌가? 여당 정치인은 대통령과 철학이 다르면 안 되나? 오바마는 자기 당 반대파 의원들을 전용기에 태워주며 설득하던데? 나와 철학이 다르니 그만두라는 거야말로 ‘나한테 줄 서라’는 말 아닌가?

이런 물음표가 붙으리란 걸 모를 리 없었을 텐데, 대통령은 총선을 앞둔 임기 반환점에 저 발언을 쏟아냈다. 이것은 대통령이 여당 의원들에게 공개적으로 보낸 메시지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나의 국정을 제대로 보좌하지 않으면, 나를 벗어나 ‘자기 정치’를 도모하면, 내가 있는데 섣불리 ‘차기’를 꿈꾸면 유 원내대표처럼 된다는 걸 보여줬다.

소통의 리더십은 기대하기 힘들 듯

새누리당 의원들은 섬뜩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지 싶다. 예전에는 달려가 숨을 그늘이 당에 있었는데, 이번엔 무방비 상태다. 남은 임기 2년 반은 권력자가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더욱이 검찰의 칼끝이 여당 최고위원 한 명을 겨냥하고 있는 터다. 당장 ‘친박’이란 사람들은 “유승민이 잘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황스러웠는지 ‘비박’의 반발은 1주일이 지나서야 들려오고 있다. 배포가 크다는 김무성 대표도 어쩔 줄 몰라하는 눈치다. 박 대통령이 여당에 보낸 메시지는 ‘공포’였고, 그것은 아주 잘 전달됐다.

유 원내대표가 물러날지 버틸지, 친박과 비박의 대결이 어떻게 정리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흔치 않은 일이어서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결과가 어찌 되든 박 대통령이 임기 후반에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지는 충분히 가늠할 수 있게 됐다. 국무회의 발언은 유 원내대표에게 전화로 하면 될 일이었다. 설득하거나 타협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는 뜻이다. 여당과의 관계에서 대화 대신 힘을 택했다. 야당과는 어떨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놀라운 점 하나는 메르스 국면의 전환을 대통령이 직접 했다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를 신문 지면에서 밀어낼 이슈는 그리스발(發) 경제위기나 한·일 외교 문제 같은 것일 줄 알았다. 예상을 깨고 대통령이 직접 이슈를 만들었다. 국민들이 메르스 대응 실패에 대한 ‘사과’를 기다리는 시점에 정치권을 향해 날카로운 ‘공격’을 했다. 남은 2년 반 동안도 소통의 리더십에 대한 기대는 접어야 하는 건가. 참 무서운 대통령이다.

태원준 사회부장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