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노소 관계없이 가장 가고 싶지 않을 곳을 꼽아보라면 병원은 그 리스트 안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단어일 듯싶다. 좋은 일로 병원에 가는 일이 아이 낳을 때 말고 또 있을까.
정기검진 정도를 제외하고는 어디가 아프니까, 문제가 있으니까 가는 곳이 병원이다. 가기 싫은 곳 중 하나지만 안 갈 수도 없는 곳이 병원이다. 전국이 메르스 공포에 휩싸인 지난 40여일간은 더 그랬을 것이다.
정부는 이제 감염 관리를 허술하게 하는 의료기관에 페널티를 주고 감염 통합 진료수가 신설 등 메르스 후속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손대야 할 곳은 산적해 있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순서다.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이 있다. 가장 먼저 해결할 일은 부실한 응급 의료체계를 바로잡는 것이다.
그동안 다수 언론이 지적한 대로 질병관리본부의 독립 및 권한 승격, 역학조사 전문가 양성, 간병 및 문병문화 개선 및 기준병실 상향 조정 등은 얽힌 게 많아 당장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상당 기간 국민 여론을 수렴하고, 의식개선 캠페인도 벌여야 한다. 따라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중장기적으로 풀어야 한다.
메르스 확진자 2명 중 약 1명은 응급실에서 감염됐다. 고작 커튼 하나만으로 다닥다닥 붙은 응급병상을 구분한 게 문제였다. 무엇보다 응급실 문전에서 전염 위험이 있는 환자를 가려내 따로 치료하는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환자 이송요원과 가족, 문병객의 무차별 응급실 출입도 막아야 한다.
상급종합병원 응급실로 환자가 몰리지 않도록 막는 의료전달체계 확립 방안도 강구돼야 한다. 삼성서울병원은 2년 전 100억원을 들여 응급실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하지만 이 응급실은 제2차 메르스 유행의 온상이 됐다. 전국에서 몰려온 환자들이 여러 날 응급실 대기도 마다하지 않은 결과였다.
소위 빅5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을 찾는 환자의 80%는 비(非)응급 일반환자라는 보고가 있다. 대한응급의학회 조사 결과다. 진짜 응급 환자는 5명 중 1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응급의료체계를 개선할 때 일반환자는 아예 응급실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시스템을 짜야 한다.
또 전염병이 의심되는 환자는 별도 공간에서 치료 받도록 해야 한다. 크게 어렵지 않다. 응급실 문전 스크리닝 제도를 의무화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선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제화 시대라 국내에 유입되는 신종 전염병은 점점 더 늘어날 텐데 지금의 응급의료체계를 그대로 두면 제2, 제3의 메르스 사태를 또 겪기 쉽다. 차제에 확실한 체질 개선을 통해 응급실의 후진성을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 중환자실과 마찬가지로 응급실에도 보호자 대기실을 만들고,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응급실에 보호자가 들어설 수 없게 해야 한다.
미국의 큰 병원은 응급실 내부를 내과와 외과, 소아과로 구분한 뒤 내과 환자는 처음부터 1인 격리시설에서 치료 받도록 한다. 속이 안 좋아 응급실을 찾은 환자는 다른 환자에게 병원균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영국에선 의사의 허가 없이 환자 마음대로 다른 병원이나 상급 종합병원으로 옮겨가 진료를 받을 수 없다.
우리가 갈 길은 명확하다. 다음엔 이번과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게 하는 길뿐이다. 땜질식 처방은 안 된다. 감염에 취약한 응급실부터 환골탈태를 도모해야 한다. 일반환자가 입원하기 위해 편법으로 대기하는 곳이 아니라 정말 위급한 환자가 적절한 응급처치를 통해 생명을 건지고, 다른 생명도 해치지 않는 구명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고쳐야 한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내일을 열며-이기수] 응급의료체계부터 손질하자
입력 2015-07-02 0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