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노화, 죽음에 대한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노령화 시대를 실감케 된다. 그런데도 책을 잡기가 자꾸 꺼려진다. 대부분이 너무 무겁고 어둡기 때문이다. 여기 완전히 다른 책들이 등장했다. 표지부터 다르다. 컬러풀하고 경쾌하다. 노화나 죽음을 현대적인 주제로, 유머러스한 이야기로 재구성해내는데 성공했다.
부모와의 마지막 시간들을 만화로
우리 딴 얘기 좀 하면 안 돼?/라즈 채스트/클
얘기는 2002년에서 시작한다. 그 해 부모는 나란히 90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뭔가가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치매 기가 악화되고 있었고 어머니는 체력이 쇠잔해져 집안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다소 두렵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현대 문화에 속하지 않는 노령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음이 보였다.”
주간지 ‘뉴요커’의 만평가인 딸은 그때부터 부모 집을 정기적으로 드나들기 시작했다. 열여섯에 대학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난 외동딸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하던 곳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2007년 아버지, 2009년 어머니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딸은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50대 워킹맘이 90대 노부모의 마지막 시간들을 보살피고 떠나보내는 일은 시간적으로 정신적으로 또 경제적으로도 쉽지 않았다. 딸은 그 과정을 만화로 그렸고 만화책으로는 이례적으로 지난해 미국의 주요 도서상을 휩쓸었다
책은 부모의 마지막 몇 해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자녀들이 어떤 일들을 겪게 되는지 자세하게 보여준다. 해가 지날수록 노인들의 상태는 더욱 빠르게 악화돼 간다. 딸은 노인 전문 변호사를 만나 부모의 재정 관련 서류를 정리해야 했고, 응급실에 교대로 실려 가는 부모를 문병하기 위해 자정쯤 울리는 전화를 받고 차를 몰아야 했다. 요양원 가는 걸 극도로 반대했던 부모는 결국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평생 살아온 아파트를 떠난다. 요양원 생활이 길어지면서 딸은 비용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오늘이 그날”이라는 연락을 받고 요양원에 갔다가 귀가하기를 몇 차례 반복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별의 순간이 온다.
“어머니에게 저녁으로 드시고 싶은 음식이 있는지 물었다. 어머니는 피자를 원했다. 나는 피자를 주문했고 빌과 고등학생 딸, 어머니, 그리고 나는 주방 식탁에 앉아 조용히 피자를 먹었다.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나는 피자를 먹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가 방금 죽었는데. 한 쪽 더 먹을래요?”
이 책은 죽음을 이야기하는 낯선 방식을 보여준다. 부모의 죽음이란 무겁고 어려운 주제에 놀랄만한 현대성을 부여했다. 충격, 슬픔, 눈물, 상실, 회한, 그리움 같은 단어들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고 담백하게, 다소 쓸쓸하지만, 종종 웃음을 유도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읽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슬픔이 차오르지만 그 슬픔은 따뜻하고 가볍다. 30여년 경력의 ‘뉴요커’ 만평가가 다듬어온 세련된 유머 감각이 글과 그림은 물론 구성 전체에 배어 있다.
노화의 비밀에 대한 경쾌한 탐험기
스프링 치킨/빌 거퍼드/다반
햇병아리, 풋내기라는 뜻을 가진 ‘스프링 치킨’은 노화 연구의 최신 결과들을 보여주는 책이다. 노화라는 문제 앞에서 한숨만 내쉬는 사람들을 향해 노화가 매우 흥미로운 생명현상이며, 그다지 절망적인 문제도 아니라고 경쾌하게 말한다.
저자는 건강과 의학에 대한 기사를 쓰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40대 초반에 접어들면서 자신이 늙어간다는 사실을 자꾸 느끼게 되고 우울해지던 그는 노화 취재에 나선다.
“동창회에 나가 보면, 어떤 친구는 그 시절 자기 부모님 같은 모습이 되어 나타나는데, 또 어떤 친구들은 방학이 끝나서 다시 학교에 나온 것 같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
책은 노화 연구라는 이 시대 가장 뜨거운 연구 분야를 조명하면서 노화를 둘러싼 여러 궁금증에 답한다. 왜 사람마다 노화의 정도가 다른가, 100세 넘게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수명 연장은 한계가 있는가, 적게 먹으면 더 오래 살까, 40대 중반의 내 자아는 10대 때의 내 자아와 어떻게 다를까 등과 같은 질문들을 익살스런 필치로 다룬다.
노화와 관련된 얘기에는 미신과 과학, 진실과 거짓, 비관론과 낙관론이 뒤섞여 있다. 저자는 무엇이 맞는 얘기인지 찾아 나선다. 최신 연구 논문들을 찾아 읽고, 중요한 과학자들과 연구실을 방문했다. 또 이 분야의 오래된 속설들을 검토하고 이단아들을 만났다.
저자는 다소 낙관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과학자들은 노화가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외부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발견하는 중이다. 다시 말해 사실상 조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여러분 할아버지와 같은 노년을 보낼 필요가 없다.”
노화라는 주제를 이 책처럼 발랄하게 풀어간 경우는 드물다. “제발 서문과 1장이라도 읽어 달라. 분명히 매료돼 끝까지 읽게 될 것이다”란 이 책 편집자의 설명은 과장이 아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우울모드 그만!… 늙음과 죽음, 발랄하게 풀어내다
입력 2015-07-03 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