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교제하는 교회

입력 2015-07-02 00:27

1958년 한 청년이 아리따운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둘은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1962년 그 청년은 국가전복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두 사람은 비록 만날 수 없었지만 사랑의 서약을 하며 몇 번이고 변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청년은 투옥 된 지 27년 만에 노인이 되어 출옥합니다.

이후 그는 국민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이 됩니다. 하지만 가정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떨어져 지낸 27년 동안 둘의 사고방식이 너무나 달라진 것입니다. 급진적이었던 남편은 온건해졌고, 처음 온건했던 부인은 남편을 대신해 투쟁을 하다 보니 매우 급진적으로 변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이혼을 합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입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을 꿈꿨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현실의 삶 속에서 사람이 꿈꾸는 이상은 그저 이상일 뿐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교제도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흔히 교회 안에서 교제를 하면 서로 아껴주고, 이해하며 품어주고, 용서해주는 모습을 그립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싸움을 멈추고 외적으로나마 하나가 되자고 주장합니다. 기독교의 모든 교파가 일단 연합을 이뤄보자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한 생각입니다. 인간이 만든 평화가 얼마나 오래갈까요. 또 이들은 그저 먹고 마시는 사교적인 측면에서만 교제를 생각합니다. “사도행전의 교인들도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었으니 우리도 서로 이해관계를 따지지 말고 우정과 사랑을 나누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교제가 세상의 우정처럼 그렇게 단순한 것일까요.

초대교회 성도들이 왜 그런 어려움을 뚫고, 함께 모여 교제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은 교회에 나가는 것 때문에 수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제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카타콤, 지하 동굴 교회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모임과 교제를 사모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모인 것은 세속적인 축복이나 비즈니스 때문도 아니고 그저 사람과의 만남이 좋아서도 아닙니다. 그들의 모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생명의 말씀이 그들에게 증거됐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5)라며 가르침을 베풀 때 많은 제자가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이것이 바로 교회의 핵심입니다. 초대교인들은 교회 건물이 커서, 또는 교회 안에 유력인사가 있어서 모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생명의 말씀이 있기에 모였습니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만일 사도들의 가르침이 없다면 교회는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전달되는 그 현장에 교회가 있고 교제가 있는 것입니다.

배경락 서울 서북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