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려해상국립공원과 섬진강, 지리산둘레길의 첫 글자를 따서 지은 400여㎞의 생태문화탐방로다. 바다, 강, 산을 이어주고 영남과 호남을 아우르는 ‘실크로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기존의 길을 재정비해 조성한 이 길은 크게 세 코스로 이뤄져 있다. 남해 바래길과 이순신 바닷길, 바다백리길 등 남해안의 한려해상길과 섬진강을 따라 걷는 길 그리고 지리산 둘레길이 중심이 된 지리산길이다. 전체 코스가 52개에 달한다. 이 중 42개 코스는 개발해서 운영을 하고 있고 나머지 코스는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남해 사람들의 삶이 깃든 ‘남해 바래길’
‘바래’는 남해 사람들의 생명을 상징하는 단어다. 옛날 남해 아낙들은 파래나 미역, 고동 등을 채취하기 위해 물때에 맞춰 갯벌에 나갔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해산물을 채취하는 것을 ‘바래’라고 했고 그때 다니던 길이 바래길이다. 해산물이 지천으로 널렸지만 옛날 사람들은 바래를 하면서 욕심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일용할 양식’만 구해 자연과 공존해온 것이다.
남해 바래길 1코스 다랭이지겟길과 2코스인 앵강다숲길 일부를 걸었다. 두 길을 가르는 경계가 명승 15호인 가천 다랭이 마을이다. 다랭이지겟길은 다랭이 마을 조상들이 지게를 지고 땔감과 곡식을 나르던 길을 복원한 것이다. 평산항에서 시작해 해변을 따라 드나들며 남으로 달려 사촌해수욕장 등을 거쳐 향촌에 이르면 동쪽으로 방향을 튼다. 여정 내내 쪽빛 남해바다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마늘밭과 다랭이논도 풍경을 더한다. 숲길을 지나기도 하고 백사장을 따라 걷기도 한다. 16㎞로 약 5시간이 소요된다.
가천 다랭이 마을에 다다르면 산비탈에 석축을 쌓아 만든 100여 층의 계단식 논이 반겨 준다. 다랭이 논은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아가던 남해 사람들의 삶이 깃든 풍경이다. 흙의 유실을 막고 경계를 만들기 위해 크고 작은 돌을 직접 쌓아 조성했다. 땅을 한 뼘이라도 더 넓히려는 농부의 마음이 담긴 유연한 곡선의 논두렁이 장관이다.
다랭이 마을 언덕배기 정자에서 2코스 앵강다숲길이 이어진다. 벽련마을까지 18㎞ 거리를 반달 모양의 ‘앵강만(鶯江灣)’을 끼고 돈다. 앵강만이라는 이름은 ‘꾀꼬리가 우는 강’에서 유래됐다. 꾀꼬리가 많이 울어 눈물이 강을 이뤘다는 설이 전해진다. 지중해와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조용한 호수 같은 바다다.
바닷가 절벽 위 숲이 우거진 길을 걷노라면 원시의 숲에 안긴 듯 착각에 빠진다. 숲 사이로 훤히 트인 전망대에 서면 바다 한가운데 ‘노도(櫓島)’가 홀로 서 있다. 1689년(숙종 15년) 53세의 서포 김만중이 유배를 왔던 땅이다.
앵강만 깊숙한 곳에 월포해수욕장과 두곡해수욕장이 나온다. 앵강만 전체를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해변에서 파도에 구르는 크고 작은 몽돌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섬진강을 따라가는 박경리 토지길
경남 하동의 문화생태탐방로인 총 31㎞의 ‘토지길’은 고(故)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실제 배경이 됐던 평사리를 지나는 1코스(18㎞)와 19번 국도를 따라 꽃길을 걷는 2코스(13㎞)로 나뉜다.
1코스의 핵심은 ‘무딤이들’로 부리는 악양들판이다. 섬진강으로 지리산 자락이 흘러내리는 곳에 가슴이 확 터지게 자리잡고 있다. 무딤이들은 밀물 때 섬진강물이 역류하고 홍수가 나면 무시로 물이 드나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순 우리말 이름. 들판은 무려 83만평이다.
소설을 통해 거듭난 평사리와 악양들이 걷기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미점리 아미산 아래에서 동정호까지 펼쳐진 악양들은 봄에는 청보리가 빚어내는 초록융단을 깐 듯한 들판을, 가을에는 누렇게 익은 이삭들로 가득 찬 황금들판을 연출하고 있다.
이정표를 따라 빨랫줄처럼 뻗은 농로를 가다보면 들판 한가운데에 자리한 소나무 두 그루와 마주한다. 훤칠하고 단아하다. 넓은 들판의 허허로움을 채워주고 있는 이 나무는 소설 ‘토지’의 두 주인공 서희와 길상 혹은 용이와 월선네처럼 다정하게 서 있어 ‘부부송’으로 불린다.
그 인근에는 동정호가 아름다운 호수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백제 의자왕 2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략할 때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지나다 당나라 악양의 ‘동정호’와 흡사하다고 해 이름 붙여진 곳이다. 악양들과 섬진강 물길이 한 눈에 들어오는 언덕배기에는 초가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고 언덕 중턱에는 고랫등 같은 기와집이 덩그렇게 자리 잡고 있다. 소설 ‘토지’의 장엄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가상의 건물을 새로 지은 곳이다.
고소산성 인근 한산사 앞에 서면 260만㎡(80만평)의 너른 악양들과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화려하거나 빼어나지 않은 대신 수더분하고 밋밋하다. 햇빛을 받은 강물이 너울질 때마다 섬진강은 황금빛 실처럼 길게 몸을 튼다.
삼국시대에 쌓은 해발 300m의 고소산성은 둘레 800m 높이 3.5∼4.5m의 성성으로 백제군과 나당연합군이 격돌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이곳에서 내려와 돌담을 따라 마을 길을 걸으면 조부잣집이라고 불리는 ‘조씨고가’가 나온다. 길은 녹차 밭과 매화 밭 사이를 물결 치듯 타고 돈다. 토지길이 아니라면 만날 수 없는 보석 같은 길이다.
‘천상의 화원’ 노고단과 지리산둘레길 트레킹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지리산 3대 주봉인 노고단은 국립공원관리공단 남부사무소에 속해 있다. 성삼재휴게소(성삼재 탐방지원센터)까지 차로 오른 뒤 3.3㎞를 더 가면 노고단대피소가 나온다. 여기서 1.3㎞ 산길을 오르면 노고단 고개(해발 1440m)다. 노고단 정상이 눈앞에 다가서 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나무데크로 잘 정비돼 있다. 길옆에는 야생화와 키 작은 나무들이 풀과 함께 바람과 추위를 견디며 자태를 맘껏 뽐내고 있다. 고산지 야생화는 보다 크고 선명한 것이 특징. 벌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유인하기 위한 야생화들의 생존 전략이다. 7∼8월 노고단 주변에 원추리가 만개하면 천상의 화원이 펼쳐진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추천하는 둘레길 여정은 지리산과 섬진강 기운이 넘치는 오미∼방광구간 12㎞이다. 천은사와 성삼재로 가는 길목에 있는 방광마을은 임진왜란 때 피난 온 외지인이 형성한 마을이다.
오미마을에는 조선시대 양반가를 엿볼 수 있는 운조루(雲鳥樓)가 자리잡고 있다. 조선 영조 52년(1776년)에 당시 삼수부사를 지낸 유이주가 세운 집으로 조선 후기 귀족 주택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一자형 행랑채, ㅗ자형 사랑채, ㄷ자형 안채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운조루는 도연명(陶淵明)의 시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라는 칠언율시 가운데 ‘雲無心以出岫(운무심이출수·무심한 구름은 산골짝을 돌아나오고)/鳥倦飛而知還(조권비이지환·날다 지친 새는 둥지로 돌아온다)’에서 앞글자만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대문을 통해 들어서면 바깥마당이 나오고 마당 뒤의 사랑채와 바로 마주하게 된다. 왼쪽에 놓인 것이 큰사랑채이고 오른쪽에 놓인 것이 중간사랑채(귀래정)다. 큰 사랑채 서쪽에 대청 2칸이 있는데 이 큰사랑채 대청 이름이 운조루다.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상사마을에는 양가집 고택인 ‘쌍산재’가 있다. 현 해주 오씨 주인장의 6대조 할아버지가 처음 터를 잡은 뒤 200년 넘게 살고 있는 고택이다. 고조부 때 서당채인 쌍산재가 세워진 이후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됐다. 1만6500㎡(약 5000평) 남짓한 터에 살림채와 별채, 서당채 등 부속 건물, 대숲, 잔디밭 등이 들어서 있다.
쌍산재에 들기 전 대문 오른쪽엔 ‘지리산 산삼 썩은 물’이 모인 ‘당몰샘’이란 우물이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채와 사랑채가 마주 보고 오른쪽에 건너채가 자리 한다. 한때 서당으로 쓰였던 서당채가 최고의 볼거리다. 안채와 별채 사이에 난 돌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대숲과 동백숲이 우거져 있다. 어두컴컴한 숲을 벗어나면 초록빛 잔디밭이 펼쳐진다. 이어 가정문(嘉貞門)이란 중문을 지나면 좁은 길 끝 가장 높은 곳에 서당채가 정갈한 자태를 뽐낸다. 널찍한 대청마루가 시원하다.
남해·하동·구례=글·사진 남호철 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