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감축안-주먹구구 감축안] 국제여론·국내 산업계 눈치보다… 막판 어정쩡 절충案

입력 2015-07-01 02:00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INDC)가 산업계와 환경단체 양쪽에서 공격을 받고 있다. 산업계는 감축량이 너무 많다고, 환경단체는 부실하다고 비판한다. 정부가 여기저기 눈치를 보며 오락가락하다 어정쩡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또 정부가 제시한 ‘2030년 배출전망치(BAU·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없었을 때 배출량 추정) 대비 37% 감축’이 국제사회에서 환영받을지 미지수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선진국과 개도국의 중간자 위치에서 온실가스 감축에 선도적 역할을 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주먹구구’ 온실가스 감축 목표=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국내 산업 지형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오는 정책이다. 하지만 정부는 국제사회와 국내 산업계의 눈치를 살피며 막판까지 오락가락했다. 정부는 지난 11일 네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1안은 배출전망치 8억5060만t에서 14.7%를 줄여 7억2600만t을 배출하는 것이다. 2안의 목표치는 19.2% 감축한 6억8800만t, 3안은 25.7% 감축한 6억3200만t, 4안은 31.3% 감축한 5억8500만t이었다.

유엔 등은 이 네 가지 시나리오가 약속 위반이라고 봤다.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 한국지부는 “네 가지 시나리오 모두 기존 정책 의지에서 후퇴한다”고 비판했다. 이 국제기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발족시킨 자문 조직이다. 우리 정부의 약속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9년 코펜하겐 기후회의에서 발표한 ‘2020년 BAU 기준 30% 감축’을 말한다. 당시 우리나라는 2020년까지 5억4300만t만을 배출하겠다고 공언했다. 네 가지 시나리오로는 이 약속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2030년 감축안이 2020년 감축안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국제사회가 우리를 온실가스 감축 ‘불량국가’로 낙인찍으려 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지난 29일 감축 목표를 37%로 높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국내 산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산업계는 1안인 14.7%도 부담이 크다고 반발해 왔다.

결국 30일 자정쯤 정부는 다시 내용을 수정했다. 감축 목표 37% 가운데 11.3%는 국제 탄소시장에서 배출권을 구입, 해결하기로 했다. 전체 감축량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하지만 배출권을 누가 구입할 것인가에 대해 정부는 “시민사회가 될 수도 있고, 지방정부가 될 수도 있다. 아직 정해진 건 없다”는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세금으로 배출권을 구입해 산업계 반발을 잠재우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정부는 산업 부문에 사실상 특혜를 줬다. 산업 부문 감축률은 배출량 전망치의 12%를 넘지 않도록 했다. 종전 2020년 목표에선 18.5%였다. 나머지는 어느 부문에서 줄일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환경단체들은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의 불가피성에 대해 산업계를 설득하지 않고 눈치만 보다 국제 여론에 떠밀려 주먹구구로 안을 내놨다”고 꼬집었다.

◇향후 일정은=37%라는 목표는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질까. 정부는 37%를 줄이면 2030년 한 해 온실가스를 5억3587만t만 배출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이명박정부가 2020년 감축 목표로 내세운 5억4300만t과 별 차이가 없다. 국제사회 시각에서 보면 2020년부터 2030년까지 10년간 감축하는 양이 거의 없는 셈이다. 정부는 “2020년 목표치는 의무적 목표는 아니었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내 산업계의 어려운 점을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정부의 감축 약속은 현실성이 없었다고 국제사회에 인정하는 꼴이다.

관건은 연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기후변화 당사국총회다. 유엔은 10월 1일까지 각국에서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종합 분석한 뒤 11월 1일 최종본을 발간할 예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12월 열리는 파리 당사국총회에서 2020년 시작되는 신(新)기후체제 합의문이 도출될 전망이다. 우리 정부는 이 과정에서 ‘37%’를 적극적으로 설득할 계획이다. 우리 정부의 감축 목표가 국제 공인을 받으면 부문·업종·연도별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후속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정부는 에너지 부문에서 감축량을 높이기 위해 원자력발전소 추가 건설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기술(CSS)을 상용화하고, 수송 부문과 건물의 효율을 높이기로 했다. 하지만 환경오염 우려 등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종=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