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무너지면 측근조차 불관용, 단호한 원칙주의… 완충지대 없는 박근혜식 스타일

입력 2015-07-01 02:17
박근혜 대통령이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군 주요지휘관 격려 오찬에 참석해 한민구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최윤희 합참의장(오른쪽 세번째) 등 군 수뇌부와 함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관계자들은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과 함께 ‘배신의 정치’를 거론하며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정면 비판한 박근혜 대통령의 결심은 흔들릴 수 없다고 설명한다. 당청관계의 파탄 또는 그에 준하는 상황 속에서도 박 대통령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는 얘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30일 “현 상황에서 바뀐 것은 없고 앞으로도 바뀔 것은 없을 것”이라고 청와대 기류를 전했다.

박 대통령은 유달리 ‘원칙’과 ‘신뢰’를 강조해 왔다. 이번 사태 역시 이 같은 박 대통령 특유의 정치적 신념과 철학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고라도 원칙과 신뢰를 지켜야 한다는 게 박 대통령의 확고한 생각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말한다.

박 대통령은 5년 전 비슷한 일을 겪었다. 2010년 6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추진하던 세종시 수정안에 정면으로 반발하면서 이를 국회에서 결국 부결시킨 것이다. 당시 국회 본회의에선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이 찬성 105표, 반대 164표로 결론 났고, 박 대통령은 이를 계기로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본격적인 대권 가도에 나서게 됐다.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도 유사한 점이 많다. 박 대통령은 위헌 소지 외에 이 법안이 당리당략의 산물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국민을 위한 길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정치공학적 계산 대신 박 대통령 자신의 원칙을 따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유 원내대표의 거취에 대한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여당 내부에서도 박 대통령에 대해선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대다수인 것도 이 때문이다.

대외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박근혜정부의 대외정책 키워드는 이른바 ‘신뢰외교(trustpolitik)’다. 최근 상황이 변화할 조짐을 보이지만 오랜 경색국면을 이어갔던 한·일 관계나 현재 냉각기가 장기화되는 남북관계에서도 상호 신뢰에 기반한 정책이 그 기반이 됐다.

박 대통령은 특히 배신에 대해선 철저한 반감을 갖고 있다. 원칙과 배신 사이의 완충지역 또는 회색지대가 없는 셈이다. 여기엔 박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청와대에서 나오면서 절감했던 경험이 배어 있다. 박 대통령은 1993년 펴낸 책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에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이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는…”이라고 했고, 2007년 자서전에서도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을 통해 사람의 욕망과 권력에 대한 집착을 똑똑히 보았다”고 했다.

이 같은 원칙 속에서 박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이었던 인사들과도 때론 단호할 정도로 연을 끊었다. 박 대통령은 ‘친박 좌장’의 반열에 올랐으나 세종시 수정안 정국에서 다른 목소리를 냈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갈라섰다. 김 대표는 2012년 대선에서 백의종군한 뒤에야 관계 복원의 실마리를 풀게 됐다. 당 대표 비서실장을 맡았던 진영 의원은 박근혜정부에서 복지공약 후퇴 논란 속에 복지부장관 직을 사퇴한 뒤 박 대통령과는 멀어졌고, 전여옥 전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의 이런 스타일이 과도한 이분법적 정치철학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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