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熱情)과 페이(pay)가 결합된 열정페이는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일을 배우는 수준에 해당된다면 돈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처음에는 주로 무급 또는 최소한의 경비만 받는 인턴사원들에게 쓰이더니, 요즘은 청년층의 저임금 노동착취를 상징하는 뜻으로 확대됐다. 극심한 취업난 시대에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줄서 있어’라는 협박이나 마찬가지다.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가 인턴 경험자(19∼34세) 등 5219명을 조사해 봤더니 53.6%가 열정페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청년 두 명 중 한 명이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이다.
2030세대는 월급에 민감하다. 일부 대기업이나 금융기관, 공기업 등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2030 직장인의 월급은 그리 많지 않다. 이들은 일은 하지 않으면서 연봉은 많이 챙겨가는 상사들을 가리켜 ‘월급루팡’이라고 비꼰다. 소설 주인공 괴도(怪盜) 루팡과 월급을 합친 단어로 월급도둑이란 뜻이다. 자기는 열심히 일하는데 빈둥빈둥 대며 일이나 시키는 상사가 있으면 얼마나 속이 뒤집어질까.
최근 한 온라인 취업관련 기관이 직장인 3349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10명 중 6명(64.1%)이 ‘사내 월급도둑이 있다’고 대답했단다. 주로 자신보다 상사를 월급도둑으로 보는 경향이 높다고 한다. 월급도둑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직급에 비해 성과가 낮아서(42.1% 이하 복수응답)’ ‘맡은 업무를 제대로 처리 못해서(38.1%)’ ‘하는 일도 없이 바쁜 척해서(36.9%)’ ‘업무시간에 딴 짓을 많이 해서(36.1%)’ ‘자신의 업무를 주변에 미뤄서(35.4%)’ 등으로 나타났다.
경제가 좋지 않아 세태가 팍팍해지니 직장 분위기에까지 영향을 미쳤나 보다. 이 조사 결과를 보고 직장 스트레스 목록이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다. 올라갈수록 월급루팡, 월급도둑 소리 듣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책상에 ‘나 월급도둑 아니거든’이라고 써놓을 수도 없고….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
[한마당-김명호] 월급도둑
입력 2015-07-01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