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에 출범한 브레튼우즈 체제는 타결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진통이 있었다. 미국의 화이트안과 영국의 케인즈안은 회담 이전에 이미 발표되었고 그 이후 두 주장 간에 상당한 갈등이 노출되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이하 펀드)과 세계‘은행’(이하 뱅크)을 주축으로 하는 화이트안은 미국의 경제학자 화이트에 의해 제시되었다. 화이트안에는 달러 중심 기축통화 체제로 가는 구상이 담겨 있었던 반면 케인즈경(卿)은 국제청산동맹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이 기구에서 ‘방코’라는 이름의 새로운 국제 결제용 화폐를 새로이 발행하는 안을 제시하였다. 이 안대로라면 미국은 달러가 기축통화임으로 인해 누리는 엄청난 이득을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브레튼우즈 회담을 통해 ‘지는 해’ 영국과 ‘뜨는 해’ 미국 간에 엄청난 신경전이 벌어진 끝에 결국 화이트안이 채택되면서 미국 주도의 ‘펀드’와 ‘뱅크’가 출범하였다. 달러의 금태환을 보장하는 이 체제는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금태환 정지 선언을 통해 붕괴된 것으로 평가되지만 사실 이 체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달러 중심 기축통화 체제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브레튼우즈 체제는 붕괴된 것이 아니라 1.0에서 2.0으로 넘어갔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초 중국 인민은행의 저우사오촨 총재는 미국에서 위기가 발생했으니 달러 대신 IMF가 발행하는 SDR(특별인출권) 제도를 확대 개편하여 기축통화로 사용하자고 주장했다. 이는 1940년대 제시된 케인즈안을 연상케 했다. 미국은 당시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냈다.
그런데 중국은 한 발 더 나갔다.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계획을 제시하고 이를 추진해 최근 사실상 출범이 확정되었다. 이 기구에 대해 처음에는 회의론도 상당했는데 영국이 전격적으로 참여를 결정하면서 미국 일본 등을 제외하고 총 57개국이 참여하는 국제 금융기구가 출범한 것이다. 중국이 발표한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 전략은 이 기구와 맥을 같이할 원대한 구상이다.
AIIB와 일대일로 전략은 금융연구원 지만수 박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시진핑주석)의 한 수’다. 우선 일대일로 전략을 통해 중국 바깥에 인프라를 구축하여 낙후된 서부 중국이 먹고살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 중국의 토목·건설·철도 회사 등이 참여하면서 과잉설비 해소와 엄청난 고용창출도 기대된다. 그리고 이 자금이 AIIB를 통해 투입되면 중국 자본에 비해 거부감이 덜하고 수많은 프로젝트가 추진될 수 있다.
AIIB는 향후 자금을 조달하여 집행하는데 이때 위안화 채권을 발행하면 위안화 사용이 확대되면서 그 위상이 기축통화 수준으로 제고된다. 결국 AIIB는 ‘뱅크’의 역할과 ‘펀드’의 역할 일부를 병행하면서 중국 주도의 국제 금융질서 탄생에 기여할 것이다. 케인즈안에 이어 화이트안이 중국에 의해 부활되면서 위안화 중심 질서 창출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종횡무진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는 중국을 보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그리고 그 위에 우리의 모습이 겹쳐진다. 미래보다는 과거에, 역량의 축적보다는 소모에 몰두하는 우리 모습은 가슴 아프다. 위기 이후 눈이 팽팽 돌게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질서 창출은커녕 적응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미래 먹거리를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필요한 이때 국가적 에너지를 엉뚱한 데에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양한 반성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창현(서울시립대 교수·전 금융硏 원장)
[경제시평-윤창현] AIIB 탄생이 부러운 이유
입력 2015-07-01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