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이라는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은 바이러스가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감염자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번 메르스 사태의 경우 감염자 또는 격리 대상자 중 일부의 사려 깊지 못한 행동 때문에 방역 당국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병의 확산을 막는 데 협조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마구 행동하여 확산을 조장하고 방역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한데 그것이 어디로 가버렸느냐는 한탄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러한 시민의식은 실종된 것이 아니라 아예 생기기조차 않은 것 같다. 타인에게 끼칠 영향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성숙한 시민의식에 대한 교육이나 훈련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사람은 훈련이 되지 않으면 본능적으로 행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급할 때의 행동은 교육과 반복된 훈련으로 인하여 자동적으로 나오게 된다. 필자는 세월호사건 때 TV 생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때 세월호 선장이 자기만 먼저 탈출하는 화면을 처음 보았다. 사회자가 ‘저건 무슨 심리냐’고 필자에게 물었다. 그런 상황은 심리적인 상태에 대해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그저 훈련이 안 된 무자격자 또는 비전문가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전문요원들이란 이러한 교육과 훈련에 단련된 사람이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배운 대로, 훈련받은 대로 행동한다. 미국에서 9·11테러 때 불타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소방대원들은 본능에 의해서가 아니라 훈련에 의해 행동한 것이다. 연평해전의 우리 용사들도 훈련에 의해 단련된 대로 행동한 것이다. 이들인들 어찌 두렵고 자기 목숨이 아깝지 않았을까? 하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에 대해 교육과 훈련받은 대로 충실히 실행한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들은 맡겨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을 위한 이타적인 행동을 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을 영웅이라 부른다.
메르스 바이러스도 쏟아지는 총알과 같다. 맞으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담당 의료진들은 그 쏟아지는 바이러스 속으로 들어간다. 이들도 사람인지라 그 상황이 두렵고 피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교육과 훈련받은 대로 실행에 옮긴다. 흰 방호복을 입고 고글에 눈만 빼꼼히 보이는 모습으로 메르스 의심환자를 이송하는 구급차에 올라타는 간호사의 눈빛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소리 않고 올라탔다. 전문요원다운 행동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성숙한 시민의식은 실종된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전문요원이 되기 위해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 경우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한 이유는 그러한 행동이 당장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그 혜택이 나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공동체에 돌아오기 때문이다.
성숙을 어린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보면 미성숙한 아이는 당장의 ‘즉각적인 만족’만 추구하지만 성숙한 아이는 당장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참고 견디면 더 큰 보상이 있는 ‘지연된 만족’을 추구한다. 이러한 성숙은 가정에서 부모의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하고 학교 교육을 통해 훈련받을 수도 있다. 또한 일반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기 영역에 대해 전문성을 충실히 배우면서 익히는 것도 나름대로 성숙해가는 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점수 따기가 아닌 인격적으로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다.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박용천 한양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청사초롱-박용천] 성숙한 시민의식 실종 사건
입력 2015-07-01 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