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의 일이다. “J가 아프대. 골수이식을 받으면 살 가능성이 있대.” 이전에 우리는 ‘가능성’이라는 말이 이토록 절박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몰랐다. J의 친구들과 가족은 골수 검사를 했고 다행히 친동생의 골수가 일치해 이식을 받았다. 그렇게 서서히 회복되는가 싶더니 다시금 어지럽고 힘이 없어진 J는 병원과 집을 바쁘게 오갔다. 늦은 밤 소식을 듣고 우리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J가 이미 어머니 품에서 눈을 감은 뒤였다.
얼마 전 친구 K와 D를 만나 J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가 처음 만난 게 언제였더라, 그러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20년 전 열일곱 살 때, 여드름이 빽빽했던 K와 엄격한 집안에서 자라 조심성이 많은 D 그리고 그들의 친구였던 J를 처음 만났다. 지금 말로 ‘썸’을 타던 친구도 있었지만 그 시절의 고등학생은 그런 외래어를 사용할 줄 몰라서 서로를 그저 ‘친구’라는 공통분모에 포함시켰던 듯하다. 우리는 각자 J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이름이 비슷해서 걔 번호가 내 앞이었지, 아마.”, “내가 산 책을 죽기 전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라고 했더니 J가 앞으로 살날이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뭔 걱정이냐? 라고 그랬는데.”, “비 오던 날 함께 보충수업 빠지고 놀다가 학주한테 걸렸잖아.” 우리는 산발적으로 떠오르는 J에 대한 기억들을 쏟아냈다.
J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났다. J는 우리에게 그리움뿐 아니라 이제 더 이상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니며 어린 나이라도 먼저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지금 내 앞에서 웃고 있는 이 사람과도 언제 작별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슬픔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J와 관련된 기억이라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이야기했다. 마치 그것이 J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라 믿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모두 속으로는 J에게 안부를 묻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너도 잘 지내니?” 이별을 준비할 수 없었기에 우리는 소중한 존재가 떠나고서야 이렇듯 뒤늦은 의식을 치렀다.
곽효정(에세이스트)
[살며 사랑하며-곽효정] 그곳에서, 너도 잘 지내니?
입력 2015-07-01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