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그리스] 국민투표 찬성→ 총리 사임·총선… 반대→ 그렉시트 가능성

입력 2015-06-30 18:51

그리스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으로 그리스 은행에 영업중단 조치가 내려진 가운데 오는 5일 국제 채권단 협상안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가 그리스의 운명을 결정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28일(현지시간) 은행 영업중단과 예금인출 제한 조치를 발표하면서 그리스 경제가 사실상 마비됐다. 은행 영업중단 조치는 국민투표 이후인 6일까지 지속될 예정이다.

자본 통제로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통한 일일 인출 가능 금액은 60유로(7만4000원)로 제한됐다. 영업중단 기간 그리스 내에서 인터넷뱅킹은 가능하지만 해외로 자금 이체를 할 수는 없다. 다만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현금인출 제한 조치가 적용되지 않는다.

영국 BBC방송은 “그리스 은행들이 지옥으로부터의 휴가를 얻었다”면서 “은행에 현금이 고갈돼 가고 있어 자본통제 조치는 불가피했다”고 풀이했다.

30일 상환 예정인 국제통화기금(IMF) 채무 15억 유로(약 1조8600억원)를 갚지 못하면 그리스는 사실상 디폴트(채무 불이행) 수순을 밟게 된다. 공식적인 디폴트 상태가 되진 않더라도 채무상환 능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어서 디폴트로 향하는 급행열차를 타게 되는 것이다.

5일 국민투표 결과가 찬성으로 나온다면 국민들이 치프라스 정부에 등을 돌린 것으로 볼 수 있어 치프라스 총리가 사임하고 조기총선이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더라도 강경 좌파세력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 채권단과의 재협상이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국민투표 결과가 반대로 나온다면 그렉시트까지 생각할 수 있다. 그리스는 7∼8월에도 유럽중앙은행(ECB)에 갚아야 하는 돈이 60억 유로에 달한다. 국민투표 이후에도 채권단과의 재협상이 불발될 경우에는 채무를 연속 체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유로존 탈퇴가 오히려 그리스에 나은 선택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뉴욕타임스(NYT) 블로그를 통해 “그리스가 이미 자본 통제에 나섰기 때문에 유로존을 탈퇴하더라도 지금보다 사태가 크게 나빠지진 않을 것”이라며 “채권단이 지난 5년간 혹독한 긴축과 개혁을 요구해 왔기 때문에 나라면 국민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극적 타결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국민투표 전까지는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9일 자신이 속한 기독민주당 창당 70주년 기념 연설에서 “그리스와 새로운 협상을 벌일 준비가 돼 있지만 국민투표가 끝나야 협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도 기자회견을 열어 그동안의 협상 과정을 소개한 뒤 “오직 자신들만 생각하는 그리스의 이기적 행태에 배신감을 느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면서 “그리스 국민들은 국민투표에서 채권단 제안에 찬성해달라”고 촉구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디폴트를 막기 위해 29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들에게 구제금융 연장안 거부 결정을 재고해 달라는 요청을 담은 서한을 발송했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지난 27일 회의를 열고 그리스가 요청한 구제금융 단기 연장안을 거부했다. ECB도 1일 그리스가 요청한 긴급유동성지원(ELA) 한도를 증액할지 다시 논의할 방침이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