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선택에 따라 정국이 중대기로에 놓이게 됐다. 그는 자신의 거취 문제를 최고위원회의에서 논의되는 데 대해 비공개석상에서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공개적으로는 “고민해 보겠다”고만 말했다. 최고 의결기구인 의원총회를 통해 원내대표로 뽑혔고, 사실상 재신임도 받은 만큼 당의 중의(衆議)를 살펴 거취 문제를 결정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29일 여권의 모든 시선은 유 원내대표에게로 쏠렸다. 지난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뒤 친박(친박근혜)계를 중심으로 그의 사퇴 문제가 공식 거론됐고 지난 주말 사이 당내에선 친박·비박(비박근혜) 간 ‘사퇴론’과 ‘불가론’이 정면충돌하는 양상까지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침묵했다. 오전 경기도 평택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제2차 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문제에 대해서만 발언했다. 회의 후 기자들이 거취 문제를 물었지만 “드릴 말씀이 없다”며 자리를 떠났다. 그는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추모식에 참석한 후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비서진과 점심을 함께했고,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행사에도 참석했다.
유 원내대표는 오후 3시 국회서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 후에도 입을 다물었다. 회의 후 의장실을 찾아가 6월 국회 의사일정과 국회법 개정안 재의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와 회동하기도 했다.
그가 유일하게 밝힌 입장은 “고심해 보겠다. 의원들의 의견을 더 들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유 원내대표의 이 같은 발언을 놓고 “사실상 자진사퇴를 거부한 것”이라는 해석과 “고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유 원내대표는 지난 주말 김무성 대표와 장시간 통화를 나누며 거취 문제를 논의했고 이 과정에서 “지난 의총에서 자신이 사실상 재신임 받은 만큼 자진사퇴할 뜻이 없다”는 취지를 김 대표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퇴는 개인적인 문제를 떠났고, 물러날 명분도 없다는 뜻이다. 자신의 사퇴가 건전한 당청 관계나 정치 발전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대의명분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유 원내대표가 자진사퇴를 거부할 경우 거취 문제는 결국 의총을 통해 매듭지어질 가능성이 높다. 친박계에서는 의총 소집 요구로 유 원내대표를 압박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표 대결’로 갈 경우 결과를 장담할 수 없고, 당내에서는 ‘어떤 결론이 나든 지도부가 상처를 입게 되고, 당 내분 역시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많다.
유 원내대표가 당장 사퇴할 경우 ‘배신자’라는 오명을 쓰고 청와대와 친박계에 떠밀려 직을 내려놓는 것처럼 보이는 만큼 즉각 원내대표직을 내놓을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유 원내대표에게 결정을 위한 시간과 명분을 줘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김성태 의원은 “본인이 원내대표로서 명예로운 판단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며 “사퇴를 기정사실로 몰고 나가면 사태는 더 악화된다”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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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30 0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