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불안이 한국 금융시장에도 전염돼 29일 코스피와 코스닥지수가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다. 그리스 사태가 유로존 위기로 확대될 경우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금융시장과 실물경제가 받는 충격은 더욱 커지고 장기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점검반을 가동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리스 디폴트(채무불이행) 현실화에 따라 일차적으로 우려되는 것은 외국인 자금의 이탈이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지면서 유럽계 금융기관 등이 한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에서 자금을 대거 빼낼 수 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투자자는 4거래일 만에 ‘팔자’로 돌아서 지수를 끌어내렸다.
유안타증권 조병현 연구원은 “단기 리스크 지표와 국내 증시 외국인 순매수 규모와의 평균적인 상관관계를 이용해 추산한 결과 그리스 이슈는 국내 증시에서 3700억∼5600억원가량의 매도 압력을 촉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나대투증권 이재만 연구원은 그리스 문제로 유럽 시중은행의 자산가치가 훼손되는 국면부터 유럽계 자금의 한국 증시 이탈이 본격화될 것이라며 유럽 시중은행 PBR(주가순자산비율)이 0.90배를 유지하는 것을 마지노선으로 제시했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과거 유럽 은행 PBR이 0.85∼0.90배였을 때 유럽계 자금이 국내 증시에서 월평균 4500억원 이상을 순매도했다. 현재 PBR은 0.97배로 아직 위험한 상태는 아니지만 향후 미국의 금리 인상 충격이 더해진다면 외자 이탈이 급격히 진행될 것으로 우려된다.
아직까지는 유로존 위기로 사태가 확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유진투자증권 박석현 연구원은 “그리스 충격이 단기적으로 유로존 금융시장과 경기회복세에 타격을 주겠지만 유로존의 방어막 구축 등으로 부정적 영향의 정도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리스 사태가 유로화 약세를 부추기면 한국 수출기업에 직접적인 악재가 된다. 유로화 가치가 하락하면 원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올라 한국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상황 악화에 대비해 비상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 관계기관 합동 점검반을 구성해 분야별로 매일 점검할 방침이다. 주형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그리스발 불안이 글로벌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미칠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통화금융대책반 회의를 열어 금융·외환시장 움직임을 점검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위기의 그리스] 유럽계 자금 증시 대거 이탈 우려
입력 2015-06-30 0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