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금요일 밤의 ‘현수막 테러’… 안 잡나, 못 잡나

입력 2015-06-30 03:03
아파트 분양을 광고하는 불법 현수막이 29일 서울 송파구 지하철 3호선 가락시장역 인근 도로변 가로수에 빼곡하게 걸려 있다.

‘바로 입주 가능’ ‘대박 할인’ ‘특별 분양’…. 서울 송파구 송파대로변은 새 아파트 분양을 알리는 불법 현수막이 점령하고 있다. 나무 사이마다, 가로등마다, 눈에 잘 띄는 사거리마다 빼곡하게 달려 있는 현수막은 시민들에게 위협감마저 준다. 끈이 끊어진 현수막이 제대로 수거되지 않아 도로에 나뒹굴며 차량 통행을 위협하기도 한다. 주민 김모(28·여)씨는 “도시 미관을 해치는 데다 시야를 방해한다. 누구나 불법인 걸 알고 있는데 왜 없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문정 법조단지와 석촌호수 주변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도로를 점령한 불법 현수막은 특히 금요일 오후에 급증했다가 일요일 오후가 되면 자취를 감춘다. 지방자치단체의 철거·감시에 공백이 생기는 주말을 노리는 것이다. 일요일 오후에 사라지는 것은 설치한 이들이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단속을 피하려고 수거하기 때문이다.

구청 직원들이 수시로 불법 현수막을 떼어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29일 송파구에 따르면 관내 불법 현수막 적발건수는 매일 200장을 넘는다. 지난해 말부터 부동산 경기가 회복 기미를 보이고 인근 위례신도시 등에 아파트 분양이 대규모로 이뤄지면서 날로 늘고 있다. 2013년 연 1만9900건이었던 적발건수는 지난해 5만1560건까지 뛰었다. 올 들어서는 지난 5월까지 5만5000건을 적발했다. 송파구는 올 연말까지 적발건수가 지난해보다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본다.

이렇게 불법 현수막을 내거는 이유는 뭘까. 송파구 관계자는 “최대 500만원 과태료를 물어도 가격대비 효과가 좋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과태료까지 감안해도 전단지 등에 광고하는 것보다 적은 비용으로 홍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 지자체는 불법 현수막에 과태료를 부과한다. 송파구의 올 상반기 부과금액은 30억원이 넘는다. 성동구는 지난해 2600여만원이던 부과금액이 올 상반기 5830만원으로 증가했다. 이렇게 부과해도 실제 걷히는 돈은 30% 미만이다.

최근에는 과태료를 대신 내주는 회사까지 등장했다. 한 현수막 제작업체는 홈페이지에 “월 2000장을 계약하면 지역에 따라 장당 1만3000∼3만원에 맞춰준다”며 “구청에서 나오는 벌금까지 대납해준다”고 버젓이 광고하고 있다. 다른 현수막 제작업체는 “구청이 쉬는 금요일 저녁에 주로 설치하고 일요일에 떼어내면 단속을 피할 수 있다”며 “단속이 있다는 걸 알지만 감수하면서 하는 거다. 처음 적발되면 벌금도 얼마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불법 현수막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 대형 아파트 시공사가 영세상인과 현수막 제작 계약을 맺고 광고 관련 전권을 위임하기 때문이다. 성동구 관계자는 “재산 파악이 되지 않는 영세업자 등이 개입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들에게 엄중한 처벌을 하기도 애매한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글·사진=김미나 최예슬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