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배신 트라우마’

입력 2015-06-30 00:10

박근혜 대통령은 잦은 배신을 경험했다. 측근의 배신으로 아버지를 잃었고,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권력이 사라지자 그 많던 추종세력이 자신을 기피인물로 멀리하는 모습을 보며 서글픔을 넘어 분노를 느꼈을 게다. 정인숙 사건 등 아버지와 관련된 부정적 언론보도를 보고 “피가 거꾸로 솟았다”고 했던 박 대통령이다.

오랜 기간 가까이서 접해 누구보다 권력의 속성을 잘 아는 박 대통령의 ‘배신 트라우마’는 깊다. 박 대통령은 2007년 펴낸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사람을 배신하는 일만큼 슬프고 흉한 일은 없을 것이다. 상대의 믿음과 신의를 한번 배신하고 나면 그다음 배신은 더 쉬워지며 결국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상태로 평생 살아가게 된다”고 적었다.

일기집 ‘고난을 벗삼아 진실을 등대삼아’에선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슬프고 우울하게 만든다. 지금은 성실성이 훌륭하여 믿음이 간다 해도 그가 과연 얼마 후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사실에 서글픔을 금치 못한다”고 썼다. 박 대통령은 신군부 시절 고난과 수모를 겪으면서 ‘신뢰를 최우선으로’ ‘배신은 용납하지 않는다’를 용인(用人)의 원칙으로 세웠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한때 자신의 비서실장이었던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낙인찍었다. 대통령의 뜻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나와 뜻이 다르다고 배신 운운하는 것은 다름과 틀림을 동일시하는 편협함의 다른 말이다. ‘배신의 정치’는 박정희정부의 공작으로 야당 소속으로 3선 개헌에 찬성한 성낙현 조흥만 연주흠 의원 같은 경우에나 해당한다.

배신은 응징해야 마땅한 불의다. 그러나 공무원연금법 개혁안을 처리하기 위해 야당의 국회법 개정안 처리 요구를 받아들인 유 원내대표 행위가 여기에 해당하는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유 원내대표도 잘해보려고 그런 것인데.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