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은총을 발견한다면 모든 게 가능해집니다(박수). 그 은총을 통해 모든 걸 바꿀 수 있습니다(박수). 놀라운 은총. 어메이징 그레이스.”
그런 다음 대통령은 연설을 멈추었다. 6000여 추도객들의 눈길이 온통 단상으로 쏠렸다. 13초 후 대통령은 노래를 시작했다. 가장 좋아한다던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였다.
찬송가 불러 추도식을 소통의 장으로
처음에는 잠긴 목소리였다가 이내 성량이 커졌다. 단상에서 잠시 웃음이 터졌지만 곧 “노래하십시오. 미스터 프레지던트”라는 격려가 나왔다. 20대 백인의 총격으로 희생된 흑인 9명을 추도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이 노래를 부를 줄 예상치 못했다가 이내 그 진심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연단 위·아래 모두가 일어나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바리톤 키에 맞춘 파이프오르간과 합창단도 뒤따랐다. 장내는 금세 ‘어메이징 그레이스’로 가득 찼다.
1절을 마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다시 연설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전과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마치 전염된 듯 연설자와 청중의 감정이 맞물렸다. ‘아멘’과 ‘예스, 서(Yes, Sir)’ 등의 추임새와 기립박수가 잇따랐다. 슬픔과 좌절, 분노가 팽배하던 27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의 추도식장은 웃음이 있는 관용의 자리로 바뀌었다.
추도연설이 통합의 메시지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교회가 받은 깊은 상처를 언급했고, 남부연합기를 인종탄압의 상징이라고 단언했다. 인종차별에 관해서는 더 많은 대화가 아니라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희생자 가족들이 법정에서 살인자에게 용서의 말을 건넨 사실을 언급하며 “보기 드문 통찰과 자기반성”이라고 평가했다. “하나님이 미합중국에 은총을 계속 내려주시기를 바란다”며 추도사를 마칠 때까지 그는 화해와 용서의 길을 강조했다.
오바마는 당초 노래를 불러야 할지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당초 연설문에는 없던 노래 얘기를 전용헬기 안에서 측근들에게 귀띔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찬송가는 평범한 추도사에 그쳤을 연설을 완전한 소통의 매개로 바꿔놓았다. 미국 언론들은 일제히 이 장면을 ‘재직기간 최고의 순간’이라고 전했다. 보수적인 폭스뉴스마저 ‘목사 오바마, 찰스턴에서 뜨다’라는 시니컬한 제목을 달았지만, “오바마의 연설이 냉정하고 오만하고 무심하다는 그간의 비판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평했다.
박 대통령도 국민 마음 먼저 어루만져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국무회의에서 정치권을 향해 쏟아낸 ‘싸늘한’ 발언으로 정치가 요동치고 있다. 16분간의 발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메르스에 대한 대응이나 경제·민생 법안 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데 대한 소회와 당부가 나타나 있다. 국회법 개정안은 위헌 소지가 다분한 게 사실이다. 이를 공무원연금법 협상과 연계한 것도 무리다.
그럼에도 표현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법에 따라 거부권만 행사하면 될 일을 굳이 정치 성토까지 했어야 했는지, 다른 방식으로 정국을 이끌 방법이 없었느냐는 지적이다. 국민들이 메르스 사태로 온통 지쳐 있는 상황이었다. 정치의 잘못을 따지기보다 국민 마음을 어루만지는 게 일차적인 기대였다. 이와 다른 길을 택했기 때문에 ‘아집’이라는 반발이 나오고, 온 나라가 소용돌이 속이다.
박 대통령에게도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순간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 다음 날 진도를 찾았던 일이다. 거친 반응이 예상되는 현장을 기꺼이 찾아 오열하는 실종자 가족들의 얘기를 경청하는 모습은 ‘박근혜만 가능한 행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와 같은 소통을 다시 기대해보는 것은 아직 대통령에게 2년반이란 긴 기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또 소통의 부족은 분열을 부르고 레임덕만 앞당길 뿐이기 때문이다.
김의구 편집국 부국장 egkim@kmib.co.kr
[돋을새김-김의구] 오바마의 ‘어메이징 그레이스’
입력 2015-06-30 0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