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적 통합의 상징이었던 유럽연합(EU)이 출범 20여년 만에 와해 위기에 놓였다. 경제 성장 둔화와 난민 유입 등 유럽을 위협하는 문제들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공동의 이익보다는 자국의 손해를 줄이는 일이 시급해진 탓이다. 영국 그리스 포르투갈의 이탈 가능성이 크게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다른 국가들에서도 ‘EU회의론’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최근 유럽 지역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반EU를 외치는 정당들이 표몰이를 한 것은 유럽의 민심을 반영한다.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쑥대밭 된 유럽, ‘공동의 이익’ 추구하며 성장했지만=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50년 로베르 슈망 당시 프랑스 외무장관은 서유럽 주요 국가에 전략자원인 석탄과 철강의 공동관리를 제안했다. 2년 후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6개 회원국으로 유럽공동체(EC)의 모체인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출범하게 된다. ECSC는 이후 유럽경제공동체(EEC), EC로 확대됐고 1993년 현재의 EU가 창립됐다. 1999년에는 단일 통화인 유로(EURO)화가 출범했다. 현재 EU 회원국은 28개국, 유로화를 쓰는 국가(유로존)는 19개국이다.
여러 가지 이름으로 존재해 온 유럽 공동체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경제가 붕괴된 유럽이 단일 시장과 단일 통화를 만들어 공동 발전을 촉진하는 데 취지가 있었다. 공동의 외교·안보정책을 수립해 미국과 러시아 등의 패권국가로부터 유럽을 보호하자는 뜻도 있었다. 유럽 공동체는 회원국 간 노동과 자본 이동의 자유를 가져왔고, 공동발전을 추구한 유럽은 국제무대에서 발언권이 높아졌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를 살펴보면 지난해 기준 EU의 국내총생산(GDP)은 18조4950억 달러로 미국과 맞먹는 수준이다.
◇경제 위기로 인한 ‘공동의 문제’ 동시다발적으로 부상=최근 몇 년에 걸쳐 유럽을 위협한 문제들은 언제까지나 단단할 것 같았던 정치·경제 동맹을 크게 흔들고 있다.
EU 균열 조짐은 그리스에서 시작됐다. 유동성 위기로 2010년 구제금융을 신청한 그리스는 독일을 비롯한 주요 EU 회원국들의 긴축정책 압박에 지쳐갔다. 올 초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당선되면서 그리스는 급기야 긴축을 이어가느니 유로존 탈퇴(그렉시트)를 불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7월 5일 그리스는 국제 채권단의 구제금융 협상안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이날 투표 결과는 그렉시트로 이어질 수 있다.
영국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찬반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다. 지난 5월 치러진 총선에서 승리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EU 협약 개정 협상을 토대로 2017년까지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영국 움직임도 경제 문제에 원인이 있다. 외국인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복지 부담을 늘리고 있기 때문에 회원국 내 인력 이동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EU 협약을 개정하든지, EU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논리다.
포렉시트(포르투갈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긴축에 반대하는 중도좌파 사회당이 향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포르투갈 역시 2011년 재정위기에 빠진 뒤 구제금융 조건으로 채권단에 긴축재정을 약속했다.
난민 문제도 EU 회원국들이 대립해 온 이유 중 하나다. 지중해를 건너다 목숨을 잃은 난민이 올해만 2000명에 육박하면서 ‘난민의 도착점’인 이탈리아 등이 난민을 분산 수용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다. 영국과 덴마크 등은 계속 반발해오다가 26일 울며 겨자 먹기로 할당제에 합의했다.
◇도처에서 탈(脫)유럽 분위기 가속…반테러 연대 등으로 잠재울 수 있을까=EU의 위기는 단기적으로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성장 둔화를 겪고 있는 가운데 여러 국가들이 EU 탈퇴를 이야기하고 있어 금융시장 불안정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스페인과 덴마크 등에서도 반EU 정당들이 득세하면서 EU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 난민 문제도, 경제 위기도 해결이 쉽지 않은 과제다.
실제로 회원국들이 탈퇴를 결정하게 되면 사정은 더욱 어려워진다. 그렉시트가 발생할 경우 금융시스템 붕괴 등 그리스 내부 문제도 있지만 다른 유로존 국가에도 위기는 전염될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프랑스에 이어 EU에서 세 번째로 경제 규모가 큰 영국이 탈퇴를 결정하면 EU에 우선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 EU는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수십개 국가의 시장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이슬람국가(IS)’ 등 이슬람 급진주의 무장세력들의 테러 위협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반테러 연대 움직임도 강화되고 있어 EU가 쉽게 무너지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러시아와 대립하고 있는 상황 역시 EU가 더욱 동맹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8일 “EU의 위기가 급증하고 이민과 테러 문제가 발생하면서 회원국간 갈등과 긴장, 분열이 있을 테지만 서로 뭉쳐야 한다는 근본적인 투지는 있다”고 전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월드 이슈] 번지는 ‘EU 회의론’… 하나의 유럽 꿈인가
입력 2015-06-30 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