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시인 김남조, 자택 헐어 예술인 둥지 만들다

입력 2015-06-29 02:55
27일 서울 용산구 ‘예술의 기쁨’에서 김남조 시인이 문주 서울대 교수, 원인종 이화여대 교수, 심문섭 전 중앙대 교수(오른쪽부터) 등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미수(米壽)를 맞은 김남조(88) 시인의 남편은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을 제작한 조각가 김세중(1928∼1986)이다. 서울대 교수와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김세중은 한국 현대조각 1세대로 꼽힌다. 김 시인은 1987년 남편의 퇴직금 등을 모아 김세중기념사업회를 발족하고 이사장을 맡아 해마다 김세중조각상 시상식을 열어왔다.

오는 7월 14일 열리는 제29회 시상식은 특별한 장소에서 마련된다. 1955년부터 김세중 일가의 자택이었던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근처 기존 건물을 헐고 신축한 ‘예술의 기쁨’에서 개최된다. 김세중기념사업회는 2015년 김세중 조각상 본상에 윤석남, 청년조각상에 이완, 한국미술저작·출판상에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을 선정했다.

개관을 앞둔 27일 기자들과 만난 김 시인은 휠체어에 앉은 채 낭랑한 목소리로 “예술계에서 잘 활용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김세중미술관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다른 분야 예술인은 찾아올 수 없으니 모든 이를 아우를 수 있는 ‘예술의 기쁨’으로 정했다”면서 “예술인이 교류하는 따뜻한 둥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 시인은 결혼 후 숙명여대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이곳에서 살았다. 집 마당에서 광화문 쪽으로 바라보면 충무공 동상이 어렴풋이 보였다. 남편이 숨진 이후 30년간 동상을 보며 추억에 젖기도 했던 정든 집을 떠나 3년 전 인근으로 거처를 옮겼다. ‘예술의 기쁨’을 건축하기 위해서였다. 2층 규모 건물(연면적 770여㎡)에는 대강당, 전시실, 휴게실, 공연장 등이 들어섰다. 김 시인이 김세중기념사업회에 기증한 대지와 신축비 등을 더하면 건물에 최소 50억원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시인은 “저렴한 대관료로 예술인이 언제든지 이용하고, 관객들도 항상 조각전을 볼 수 있고 시 낭송회도 즐기며 따뜻한 가슴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내가 세상을 떠나서도 유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