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정국 파장] 유승민, 정치인생 건 카드… 버티기? 던지기?

입력 2015-06-29 02:11
박근혜 대통령의 정면 공격으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28일 찾은 국회 새누리당 원내대표실이 텅 비어있다. 이병주 기자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한층 격렬해진 친박(친박근혜)의 사퇴 공세에 정치 인생 최대 고비를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야당은 대통령이 거부한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결해야 한다고 유 원내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야당 불참으로 국회 파행이 길어질수록 책임론은 유 원내대표를 향할 가능성이 크다.

◇친박 흔들기에 국회 공전까지 코너 몰린 劉=유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5일 국무회의에서 ‘여당 원내사령탑’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이후 연일 자세를 낮추고 있다. 어긋난 당청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여기엔 박 대통령과 친박에게서 쫓겨나듯 물러날 경우 불명예 퇴진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건 물론이고 정치 인생도 끝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유 원내대표가 취임 이후 줄곧 당 중심의 국정 운영을 강조해 왔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도전의 길을 택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를 둘러싼 환경은 녹록지 않다. 친박은 사생결단식으로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지역구(대구 동구)이자 박 대통령의 영향력이 큰 대구 민심도 심상치 않다. 대구 지역의 한 의원은 2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대구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고 대통령에 대해 애정이 깊은 곳이라 유 원내대표를 거북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야당의 반발로 국회가 공전하고 있는 상황도 유 원내대표로선 부담이다. 지난 26일엔 9개 상임위 회의가 전부 취소됐다. 다음 달 1일 예정된 6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조차 개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다만 새정치연합이 유 원내대표 대신 청와대 공격에 주력하기로 방향을 선회해 조금이나마 숨통이 틔게 됐다. 지난주만 해도 새정치연합은 “국회법 개정안 재부의 일정을 잡아오기 전까지 (협상) 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다”(박수현 원내대변인)며 유 원내대표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리는 듯했다.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여당 원내대표는 무기력하게 고개를 숙이고 여당 내 친박 의원들은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를 풀어드리기 위해 여당 원내대표 찍어내기에 팔을 걷어붙였다”고 싸잡아 비난했다.

◇버티기냐, 던지기냐=유 원내대표는 거취 문제에 대해선 말과 행동을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 친박이 ‘겁박’에 가까울 정도로 당무 거부, 최고위원 동반 사퇴 등을 대대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문제인 만큼 직접 대응은 삼가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유 원내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대표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정치 철학과 소신이 분명한 유 원내대표 성정상 친박이 끌어내리기 전에 먼저 그만둘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하지만 현재로선 가능성이 크지 않다. 한 의원은 “여러 의원들이 유 원내대표에게 ‘지금 쫓겨나듯이 물러나면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며 “여기서 원내대표직을 던지면 정치인 유승민의 행보는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