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내대표 거취가 국정보다 우선인 새누리당

입력 2015-06-29 00:04 수정 2015-06-29 09:20
유승민 원내대표 거취를 둘러싼 새누리당의 내전이 가열되고 있다. 친박과 비박의 연대의식은 박근혜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한마디로 산산조각나기 직전이다. 대통령의 지원사격을 등에 업은 친박은 유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현 김무성·유승민 체제를 유지하려는 비박에 맞서 기어이 유 원내대표를 끌어내릴 태세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설상가상 메르스 사태로 국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마당에 원내대표 거취가 여당을 양분시킬 만큼 중차대한 문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무성 대표는 28일 친박 인사들과 비공식 접촉을 갖고 사태 수습을 모색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친박의 입장이 워낙 완강해 만족할 만한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유 원내대표는 지난 25일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직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사실상 재신임을 받았다. 그럼에도 친박계가 대통령 말 한마디에 의총 결과를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결과를 뒤집으려는 시도는 ‘친박=대통령 거수기’를 자인하는 셈이다. 당내 민주주의에도 반한다.

공무원연금법 개혁안과 국회법 개정안을 연계 처리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와의 소통에 문제를 드러낸 유 원내대표의 책임은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 책임을 오롯이 유 원내대표 개인에게 물으려는 친박의 행위는 졸렬하다. 친박 의원 대다수가 국회법 개정안에 찬성해놓고 뒤늦게 유 원내대표 책임을 거론하는 것은 희생양 찾기에 다름 아니다.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공유해야 제대로 된 여당이라 할 수 있다. 공동운명체로 국정을 책임진 여당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이런 점에서 친박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박 대통령의 공개경고를 계기로 비박에 비해 열세인 당내 역학구도를 바꾸려는 의도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친박은 전당대회, 서울시장 후보 경선, 국회의장 후보 경선, 원내대표 경선 등 표 대결 때마다 번번이 비박에 졌다. 18대 총선에선 친박이, 19대 총선에선 친이명박계가 희생양이 된 전례가 있듯이 친박은 비박 지도부가 계속해서 당을 장악할 경우 내년 4월 치러지는 20대 총선에서 물갈이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다. 자신들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유 원내대표 사퇴 요구 등 비박 지도부를 흔들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지 않을 경우 친박계인 서청원·이정현 최고위원이 동반사퇴하면 김무성 대표체제는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친박은 서·이 최고위원 동반사퇴 카드로 대통령과 원내대표 가운데 누구를 선택하겠느냐고 김 대표를 몰아붙이고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당면한 국정 최대과제는 경기회복과 메르스 극복이다. 국정은 안중에도 없는 여당의 헤게모니 싸움이야말로 박 대통령의 말대로 선거로 심판해야 할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