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결혼 합법화 주도자는 레이건이 낙점한 케네디 美 연방대법원 대법관

입력 2015-06-29 02:40

지난 26일(현지시간) 미국 전역에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연방대법원의 역사적 결정을 주도한 이는 앤서니 케네디(78·사진) 대법관이었다.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은 이번 사안을 놓고 예상대로 정치적 스펙트럼에 따라 4대 4로 찬반이 팽팽히 갈렸다.

이 균형을 무너뜨린 게 케네디 대법관이었다. 케네디는 이미 두 차례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주요한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특히 2013년 동성 커플이 연방정부에서 부부에게 제공하는 각종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한 1996년 결혼보호법(DOMA)에 대해 위헌 판단을 해 동성결혼 합법화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날도 캐스팅 보트를 행사해 미국이 21번째로 동성결혼 허용국가가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결정자’ ‘스윙보트’라는 별명이 들어맞은 셈이다.

그는 동성결혼 합법화 결정문에서 “결혼보다 더 심오한 결합은 없다”며 “왜냐하면 결혼은 사랑과 신의, 헌신, 희생 그리고 가족의 최고 이상을 구현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동성커플 남녀가 이러한 결혼의 이상을 경시한다고 하는 것은 오해이며, 그들은 그것을 존중하며, 그것도 매우 존중한 나머지 그들 자신을 위해 결혼을 실현하고 싶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케네디 대법관은 “동성 커플들의 희망은 비난 속에서 외롭게 살거나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의 하나로부터 배제되는 게 아니라 법 앞에서의 평등한 존엄을 요구한 것이며 헌법은 그 권리를 그들에게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날에도 오바마 케어(건강보험개혁법)의 정부보조금이 위헌이 아니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손을 들어줬다. 공화당 등 보수 진영이 존 로버트 대법원장이 이끄는 현재의 미 대법원이 왼쪽(진보)으로 기울었다고 의심하는 데 주요한 빌미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주목할 것은 케네디 대법관이 1987년 공화당 소속이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지명됐다는 점이다. 보수 대통령이 지명했다고 해서 보수적인 결정을 내린다고 할 수는 없지만 케네디 대법관은 당시 보수파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케네디는 기업의 권리를 철저히 옹호하는 보수파의 주류로 여겨졌다.

초기에는 그러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케네디 대법관은 시간이 갈수록 보수와 진보를 오가는 결정을 내려 이제는 중도 성향으로 분류된다. 특히 동성애자 권리 등 사회적 가치와 관련된 사안에서 진보 측에 서는 경향이 뚜렷하다. 허핑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은 케네디 대법관이 동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들의 아이콘(우상)이 됐다고 전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