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태석 SK하이닉스 노조위원장 “경영위기 때마다 勞使不二 정신… 협력사 고충 이해”

입력 2015-06-29 02:00 수정 2015-06-29 09:55
박태석 SK하이닉스 노조위원장이 지난 24일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임금공유제 도입 배경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지난 16일 열린 ‘SK하이닉스 노사 사회적 책임 실천 협약식’에서 박태석 SK하이닉스 노조위원장(왼쪽 첫 번째)이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네 번째), 박성욱 SK하이닉스 사장(다섯 번째) 등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100대 56.7’(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의 벽을 깨보자.” 한국노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기업(고용 인원 300인 이상)과 중소기업의 월평균 임금(지난해 기준)은 각각 359만8000원과 204만원이다. 이런 격차를 깨지 못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 노사가 있다. SK하이닉스 노사는 지난 16일 임금 인상분의 20%를 협력사에 지원하는 ‘임금공유제’를 도입했다. 직원들이 직접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어 임금 인상분의 10%를 협력사 직원들에게 내놓겠다는 취지였다. 노동조합이 먼저 제안했다. 회사도 같은 규모(10%)를 협력사 지원금으로 내놓겠다고 손을 잡았다. 이러한 SK하이닉스 노사의 결정은 ‘착한 임단협(임금과 단체협약)’ ‘고용시장 개혁을 위한 통큰 결단’ 등의 평가를 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경영위기 때마다 ‘노사불이(勞使不二·노조와 회사는 하나)’의 정신으로 신뢰를 쌓아온 결과였다. 올해는 임금인상분 중 노조와 회사가 33억원씩 조성해 총 66억원을 5개 협력사 4000여명에 지원한다. 이들 협력사에 돌아가는 임금인상 효과는 약 6.5% 정도다. 경기도 이천 SK하이닉스 본사에서 지난 24일 박태석 노조위원장(47)을 만났다.

-올해 임금 인상률(3.1%)이 지난해(7.5%) 절반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노조 투표결과 높은 찬성률(82%)이 나왔다. 구성원들을 어떻게 설득했나.

“성과급을 나누는 ‘성과공유제’는 해오고 있었지만 매달 들어오는 임금에서 나눈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SK하이닉스 직원들이 글로벌 기업 직원으로서 갖는 자부심이 있었고, 임금격차라는 사회문제에 대한 공감이 있었다고 본다.

임금요구안을 만들 때 단돈 1000원, 1만원이라도 협력사 직원과 나누겠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그러다 ‘조금씩 더 나누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임금인상분 10%까지 확대됐다. SK하이닉스 구성원들이 현장에서 함께 협력사 직원들과 일하는데, 평소 고충을 듣기도 하고 임금격차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하고 있었다. 부모, 형제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과의 임금 격차를 거창하게 사회 문제로 인식하지 않더라도 바로 내 옆에서 함께 일하는 협력사 직원을 위해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조직 내 공감을 얻었다.”

-협력사 임금 수준을 높이면 구체적으로 SK하이닉스와 어떻게 ‘윈윈(WinWin)’ 할 수 있다고 보나.

“협력사의 경쟁력이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잘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협력사에 들어가야 우리 회사 제품의 품질도 높아진다. 특히 SK하이닉스는 반도체 회사다 보니 품질이나 수율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협력사를 ‘가고 싶은 회사’로 만들어 우수 인력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협력사의 임금 수준이 올라가면 인력 수급이 원활해질 것이고 업무 수준도 올라갈 것이다. 그것이 다시 SK하이닉스에 긍정적인 영향으로 올 것이라 확신한다.”

-임금공유제 발표 이후 구성원들의 반응은 어떤가. 협력사 직원 처우 개선 문제를 회사만이 아닌, 노조가 공동 부담하는 것에 대한 반발은 없었나.

“SK하이닉스 협력사의 경우 납품이 아니라 근로를 제공하는 고용 도급 방식이다. 임금은 사회적 기준에 비해 떨어지진 않았지만 SK하이닉스 직원들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상황이다. 매년 회사가 도급임금 단가를 인상해주지만 우리가 더 도와주면 더 많이 올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에만 “협력업체 임금을 올려줘라”고 요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함께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발표 이후 노조 게시판에 많은 글이 올라왔다. ‘SK하이닉스의 위상이 다시 섰다’라는 칭찬이 대부분이었다.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고 사회 전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노사 모두 위상 제고가 됐다는 반응이었다. 물론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다만 임금공유제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 올해 임금 인상률이 지난해보다 낮아서 ‘너무 앞서간 것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임금이라는 것은 많이 받아도 부족하게 느낀다고 본다. 그래서 노조위원장이 괴롭다(웃음).”

-임금공유제를 명목으로 협력사 지원분을 포함해 노조가 과도한 임금 인상을 요구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협력사 임금 교섭을 대신해주는 상황이 돼선 안 된다. 협력사 지원분을 포함해 인상을 요구하면 회사 부담이 커지게 된다. 우리가 받는 일부를 나눠주는 개념이지, 미리 나눠줄 것을 예상하고 더 달라고 요구해선 안 된다. 일단 임금교섭을 한 뒤 그 결과를 갖고 나눠줄 것을 논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노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회사 측은 매년 올해 규모(약 60억원)는 협력사 지원금으로 내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회사 사정이 어려워진다거나 임금 인상률이 더 낮아질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임금공유제는 협력사와 우리를 하나의 회사로 보는 것에서 출발했다. 만약 회사가 어려워 우리도 임금을 올리지 않는다면 협력사 지원분도 쉽게 올리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지원하던 금액을 없애거나 깎기보다는 소폭이라도 올려주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어렵다고 해서 협력사의 임금이나 단가를 낮추는 것은 임금공유제 취지가 아니다. 물론 매년 66억원이 회사에는 부담일 수도 있지만 66억원이 회사 존폐 위기를 겪을 정도의 규모는 아니다.”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구성원들에게 지나치게 책임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내부 불만은 없나.

“노조의 가장 기본은 일자리 창출(고용)이고 임금, 복지다. 노조가 하고 있는 사회적 책임 활동은 국가가 하고 있는 것이지만 대기업도 함께 나서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자는 취지다. SK하이닉스는 사회공헌 기금도 노조와 회사가 일대일 매칭으로 마련한다. 구성원이 13억5000만원을 내면 회사도 그 금액을 내놓는다. 책임만을 강조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활동에 회사도 적극 지원한다. 또 대기업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의식도 필요하다고 본다.”

-SK하이닉스 노조는 30여년간 ‘무분규’ 기록을 갖고 있다. 노조가 바라보는 회사는 어떤 존재인가.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파국이라고 생각한다. 무분규라는 것 자체가 서로 양보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얘기다. 하이닉스는 1983년 현대전자로 설립된 이후 수차례 경영 위기를 겪었다. SK그룹에 편입되고 흑자로 돌아서 성과급을 받기 시작한 것이 불과 2년 전부터다. 분규할 시간이 없었다(웃음). 회사가 당장 없어지고 외국에 팔려나갈 위기 속에서 직원들이 느꼈던 감정은 ‘회사가 있어야 내가 있다’라는 것이었다. 이런 경험들이 노사를 끈끈하게 만들었다. 노조는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회사 역시 구조조정 등을 통해 인력을 줄이거나 하지 않았다. 서로 신뢰가 쌓였다고 생각한다.”

-대기업 노조를 ‘귀족 노조’라고 비판하는 시각이 많다. 이번 성과공유제가 다른 기업 노조, 더 나아가 우리나라 노동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는가.

“우리(노사)끼리 협의해서 한 것뿐이기 때문에 사회적 이슈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다. 다른 노조에서 ‘SK하이닉스 때문에 덩달아 압박감을 받는다’고 반응을 해와 부담스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다(웃음). 하지만 양극화 문제, 귀족노조 문제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사회적 이슈가 될 것이라고 본다. 이제는 조금 더 많이 받는 사람(대기업 구성원)이 나누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강요에 의해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사 간 협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이뤄나가야 한다. 빼앗아서 나눠 주는 것은 진정한 ‘나눔’이 아니다. 정부도 노사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협력사나 사회와 성과분을 나눌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천=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