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 울린 오바마의 ‘어메이징 그레이스’… 美 흑인교회 총기 난사 희생자 추모사 도중 찬송가 불러

입력 2015-06-29 02:51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 첫 번째)이 26일(현지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 열린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인 클레멘타 핀크니 목사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하다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선창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흑인교회 총기 난사 희생자의 장례식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감동적인 추도사를 했다.

미국의 인종문제에 대한 성찰과 그 정치적 의미를 짚은 연설 대목도 감동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추도사의 백미는 연설 말미에 그가 선창한 찬송가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30분 남짓 추도사를 하다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한동안 침묵하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놀라운 은총)’의 첫 소절이었다.

“놀라운 은총, 얼마나 감미로운 소리인가. 나 같은 비참한 사람을 구해 주셨네. 한때 길을 잃었으나 지금 인도해주시고 한때 장님이었으나 이제 나 보이네.”

오바마 대통령의 열창에 박수가 터져 나왔고, 단상의 교계 인사들이 차례로 일어섰다. 성가대와 대부분이 흑인인 6000여명의 추모객이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합창했다. 그는 “이번 주 내내 은총에 대해 생각했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가족들이 보여준 은총에 대해, (이번 총기 난사사건에서 희생된) 핀크니 목사가 설교했던 은총에 대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인 ‘어메이징 그레이스’에 묘사된 은총에 대해”라고 말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영국 성공회 존 뉴턴 신부가 흑인 노예무역에 관여했던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이 죄를 사해준 신의 은총에 감사한다는 내용의 찬송가다.

오바마 대통령은 “핀크니 목사가 그 은총을 발견했다”고 말한 뒤 다른 희생자들 8명의 이름도 차례로 부르며 같은 말로 추모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하지만 그의 연설은 희생자에 대한 추모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가 집권 이후 제기해 온 인종문제를 직접 건드렸다. 미국 언론은 백인의 증오범죄에 의한 흑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자리에 참석한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의 입에서 이런 발언과 노래가 나왔다는 점에서 이날 장례식의 울림이 더욱 크다고 평가했다.

새론 존슨 정치컨설턴트는 CNN에 “오늘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으로서 추모사를 한 것은 물론 주로 흑인이었던 청중에게 또렷이 치유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면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른 것은 한 편의 서사시였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슬픔과 승리, 은총이 뒤섞인 오바마의 특별한 날’이라는 기사에서 오바마에게 지난 한 주는 실제로 은총의 한 주였다며 이날 장례식 장면과 연결해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주 미 의회에서 TPA(무역협상촉진권한) 부여 법안이 통과되고 대법원이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 국정의제인 오바마 케어(건강보험개혁법)의 법적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을 은총에 비유한 것이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