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진애] 글쓰기가 두려울 때

입력 2015-06-29 00:20

글쓰기 주제를 잡기 무척 어려울 때가 있다. 두려울 정도다. 꼭 써야 할 주제는 너무 진지한 것이라서 주제로 삼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가벼운 주제로 글을 쓰기에는 도저히 손이 나가지 않는다. 이 공간에서 글을 쓰는 이 시점의 나의 심리 상태다. 속마음 같아서는 메르스 역병을 막지 못한 국정의 무능함과 나태함을 지적하고 여전히 면피와 은폐와 회피를 추구하는 상태를 통렬하게 지적하고 싶다. 역병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라 이에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 병이 더 무서울 정도다.

녹조로 뒤덮이고 큰빗이끼벌레가 창궐하는 4대강 사업과 같은 무용하고 유해한 사업이 아무런 심판도, 아무런 조치도 없이 그대로 있는 불가해한 현상이 계속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나? 한 재벌의 상속을 둘러싼 이상한 거래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주요 뉴스에서는 그 속사정이 밝혀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정을 이끄는 국무위원들이 마치 꿀 먹은 벙어리들 모양 사시나무 떠는 듯한 표정으로 회의에서 주르르 앉아 있는 꼴을 왜 모든 국민들이 봐야 하는가? 여당의 국회사령탑이 대통령에게 사과한다며 90도 절을 해야 하는 저간의 사정은 또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을 일으킨 최고 권력자의 치명적인 권력병을 이대로 보고 있어야만 하는가?

참으로 우리 사회의 병은 심각하다. 메르스라는, 막을 수 있는 역병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의 심리를 갉아먹는 이 사회적 역병의 실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일상 주변의 소소한 생활 이야기를 하기 힘든 이유이다. 외면할 것인가? 회피할 것인가? 다른 소일거리를 찾을 것인가? 극복할 것인가? 맞설 것인가?

부정의 에너지가 퍼지면 우리의 면역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작은 외부의 침범에 쉽게 무너진다. 자칫 죽음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노인은 메르스로, 어린아이들은 세월호로, 청년은 실업으로 죽어간다’는 저간의 설에 담긴 부정적 심리를 어떻게 떨쳐버릴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런 고민을 왜 내가 해야 하는가?

김진애(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