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와 싸우는 사람들] 편견·바이러스·격무에 시달리는 간호사들

입력 2015-06-27 02:14
방호복으로 완전무장한 강동경희대병원 간호사들이 26일 서울 강동경희대병원 인공신장센터에서 혈액투석 환자들의 투석 작업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이 병원 간호사들은 피로 누적과 사회적 편견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구성찬 기자
“아이들이 동네 마트에라도 가면 벌벌 떨면서 돌아다녀도 괜찮으냐고 묻는대요. 동료들 얘기를 들어보면 학교에선 대놓고 ‘부모님이 병원에 다니는 사람 손들어봐’라고 한다더군요.”

서울 강동구 강동경희대병원에서 26일 만난 김모(35) 간호사는 병원 근처 고시원에서 출퇴근을 한 지 일주일이 되간다. 밤마다 전화로 “언제 만날 수 있냐”고 묻는 딸(3)과 아들(7)이 눈에 밟힌다. 그는 바이러스는 물론 편견과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76번 환자가 강동경희대병원 응급실에 왔던 지난 5일 이후 김 간호사 가족의 삶은 달라졌다. 7일부터 자가 격리를 시작하면서 아이들의 어린이집, 초등학교에 소문이 났다. 김 간호사는 “가족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둘러대고 2주간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35년간 살아온 동네에선 김 간호사와 친정어머니가 메르스 확진 환자라는 ‘괴담’이 돌았다.

격리가 끝날 때쯤 아들의 담임교사로부터 “아무 이상 없다는 공문을 보낸 뒤 아이들이 등교하게 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사실상 나오지 말라는 얘기였다. 아들의 학교에는 온갖 얘기가 들끓었고 아이들은 동네 놀이터에 나가 따돌림 당하기 일쑤였다. 아들은 등교할 때마다 보건실에서 따로 열을 재고 나서야 교실로 갈 수 있었다.

결국 김 간호사는 또 한 번의 격리를 선택했다. 오전 6시부터 밤 12시까지 격무에 시달리고도 편히 쉬지 못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 고시원 공동샤워장을 쓰면서 낯선 이와 마주치는 게 싫고, 세탁비와 식비·고시원비까지 내야 해 부담이 만만치 않다. 그래도 고시원에서 주는 밥과 근처 마트에서 산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꿋꿋이 버텨내고 있다.

“남편은 ‘왜 당신이 집을 나가야 하느냐’고 화도 냈지만 동네엄마들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에요. 집과 병원을 오가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겠죠. 방학인 다음달 17일까지는 고시원에서 살 생각을 하고 있어요.”

강동경희대병원 인공신장센터(투석실)를 이용했던 환자(165번)가 감염돼 18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함께 있었던 111명의 환자 중 70여명이 병원에 격리 입원됐다. 병원은 20일 전면 폐쇄됐다. 병원마다 한 곳뿐인 투석실이 나흘 만에 21개나 더 마련됐다. 환자를 돌보기 위해 수도권 곳곳에서 26명의 간호사가 지원을 나왔다. 아직 14명의 간호사가 더 필요할 정도로 일이 몰린다.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지원 근무 간호사들도 병원 근처 모텔과 고시원을 전전한다. 투석실 업무는 전문성이 필요해 일반 간호사는 해낼 수 없다. D등급 전신방호복에 보호안경, 의료용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면 눈앞은 김이 서려 뿌옇게 되고 온 몸은 땀에 흠뻑 젖는다. 그래도 견딜 수 있다. 가장 힘든 것은 ‘편견과의 사투’다. 사명감 하나로 힘들게 서있다.

간호사 A씨는 사흘 전부터 근처 고시텔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함께 살던 언니에겐 “직장에 동생이 메르스 격리자를 치료하고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메르스 관련 업무를 보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가면 따돌림 당하게 된다는 게 이유다. 병원 실습생이라고 둘러대고 들어간 고시텔에도 소문이 날까봐 전전긍긍한다. 경기도 일산에서 지원 근무를 나온 B간호사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우리 병원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한걸음에 달려왔다”며 “걱정할까봐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했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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