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거부권 정국의 후폭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본인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유승민 원내대표 거취 문제가 여전히 정국의 뇌관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은 26일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지 않으면 엄청난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고 압박했다. 새누리당은 흉흉한 시나리오 속에 휩싸였다. 여당 내부의 금기어였던 박근혜 대통령의 탈당이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상황이다. 친박 성향 최고위원들이 집단 사퇴해 김무성 대표 지도부를 흔들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박 대통령과 친박 의원들이 동반 탈당해 신당을 창당할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온다.
청와대는 이 같은 시나리오들에 대해 “소설 같은 얘기”라고 일축했다. 새누리당 지도부 인사들도 “박 대통령의 탈당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런 시나리오들이 새누리당 주변에서 확산되는 것이야말로 풍전등화(風前燈火)와도 같은 여권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 주소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시 불붙는 ‘유승민 사퇴론’=새누리당이 지난 25일 의원총회를 통해 유 원내대표를 재신임하기로 뜻을 모았기 때문에 유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는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류는 하루 만에 달라졌다. 청와대가 재신임 결정에 대해 강한 불만을 피력했다는 사실이 새누리당에 전해졌다. 한 친박 의원은 “새누리당이 유 원내대표를 재신임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어떻게 대통령의 뜻을 존중한다고 얘기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대통령 정무특보인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은 “진정한 리더라는 것은 거취를 누구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면서 유 원내대표의 자진사퇴를 압박했다. 그러나 김무성 대표는 “의원들의 생각도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유 원내대표를 재신임키로 한 의총 결과를 따라야 한다는 의미다. 비박(비박근혜)계 의원은 “청와대와 친박이 의총에서 재신임받은 유 원내대표를 끝까지 흔들 경우 많은 의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태흠 의원을 주도로 한 친박 의원들이 유 원내대표 거취를 논의할 의총 소집을 요구하고 나섰다. 김 의원은 “당내에서 유 원내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는 만큼 이 문제를 제대로 토론해 매듭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 거취 문제를 놓고 친박과 비박 간 내전이 재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대통령 탈당설·최고위원 집단 사퇴설·신당 창당설까지=친박인 이장우 의원은 YTN라디오에 출연해 대통령 탈당설과 관련, “여당이 대통령의 국정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그런 결정도 할 수 있다”면서 “원인을 제공했던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는 게 원활한 당청 관계를 위해 좋다”고 강조했다.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는 친박 성향 최고위원들이 집단 사퇴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친박인 서청원 김을동 이정현 최고위원에다 유 원내대표의 책임론을 주장하는 김태호 최고위원이 전격적으로 사퇴 카드를 던질 경우 김무성 지도부는 와해돼 조기 전당대회가 불가피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친박들은 ‘지도부 붕괴냐, 유 원내대표 사퇴냐’ 중 하나를 택하라고 김 대표를 몰아붙이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박 대통령과 친박 의원들이 동반 탈당하는 ‘경우의 수’도 배제할 수 없다. 여권발 정계개편이라는 핵폭풍이 불어닥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유승민 뇌관’… 與 폭풍전야
입력 2015-06-27 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