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피운 배우자가 이혼을 청구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할까? 대법원은 지난 50년간 혼인파탄에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유책주의). 그러나 최근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 파탄이 난 혼인생활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책임 소재를 떠나서 파탄 난 혼인관계는 청산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파탄주의).
◇“파탄 혼인관계 유지는 가혹” VS “유책 배우자 부정행위에 두 번 고통”=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26일 이런 쟁점에 대한 양측 입장을 듣는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15년째 아내와 별거하고 있는 A씨가 제기한 이혼청구 소송이 대상이었다. 1976년 결혼한 A씨는 1996년 다른 여성을 만나 딴살림을 차리고 자녀도 뒀다. A씨는 아내가 이혼을 거절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법원은 A씨를 혼인파탄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로 판단하고,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존 유책주의 판례를 따른 것이다.
A씨를 대리하는 김수진 변호사는 파탄주의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파탄 난 혼인관계를 계속 유지하려는 노력은 부부를 비롯한 관련 당사자 모두에게 고통을 줄 뿐”이라고 말했다. 과거 유책주의가 방지하고자 했던 ‘축출이혼’은 여성의 지위 향상 등으로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는 설명이다. 연세대 이화숙 교수는 “파탄주의를 통해 ‘성숙한 이혼’과 ‘깨끗한 청산’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봤다. 유책배우자의 책임은 위자료 지급과 재산분할 과정에서 충분히 물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A씨 아내 측 대리인인 양소영 변호사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면서까지 유책배우자의 행복추구권이 보호될 수 없다”고 맞섰다. 여전히 축출이혼이 발생할 수 있고, 이는 상대 배우자와 자녀에게 심각한 경제적 곤란, 고통을 야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현행 위자료나 재산분할로 피해를 보전하는 것도 어렵다고 봤다. 양 변호사는 “평생 뒷바라지한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아내에게 장래 부양료를 지급하는 제도조차 시행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오랜 기간 별거 중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분할대상이 되는 재산에 대한 기여도도 거의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파탄주의’ 인정 위한 선결과제는…=양측은 파탄주의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적 흐름이고, 파탄주의를 위해 먼저 해결돼야 할 과제들이 있다는 점에서 의견 일치를 봤다. 대법관들의 질문도 선결과제의 해결방안에 집중됐다.
혼인파탄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지부터가 문제다. 유책주의 입장에선 객관적 기준 설정이 어렵기 때문에 혼인생활 파탄 인정을 둘러싼 자의적 법해석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별거기간을 기준으로 삼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사례를 들며 “3∼5년 동안 별거했다면 혼인생활이 파탄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혼 후 유책배우자가 상대방의 생활을 보장하는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양측은 파탄주의를 도입한다면 재산분할과 위자료 청구 과정에서 유책배우자에게 더 많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외국의 경우처럼 부양료를 청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다만 원고 측은 현재 이혼소송 절차에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본데 비해 피고 측은 법적제도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는 ‘시기상조론’을 펼쳤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단번에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오랜 연구와 토의, 숙고를 거쳐 가장 적절한 결론을 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바람피운 배우자도 이혼 청구 가능? 공개변론] “파탄난 혼인 유지 고통” vs “축출이혼 가능성 여전”
입력 2015-06-27 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