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 개그의 핵심은 신랄함이다. 세태를 꼬집는 촌철살인(寸鐵殺人)으로 서민들의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곤 한다. 미국 방송들의 단골 메뉴는 정치 풍자다. 유력 정치인은 물론 전현직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토크쇼 출연을 선호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ABC의 간판 토크쇼 ‘지미 키멜 라이브’의 ‘못된 트윗(Mean Tweets)’ 코너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대통령이 요즘 머리가 센 것 같다’ ‘누가 오바마에게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게 비법 좀 알려줘라’ 등의 트윗이 소개되자 방청석에 웃음이 터졌다. 골프광인 오바마 대통령은 ‘오바마를 세계 어디쯤의 골프 코스 한복판에 데려가서 놔두고 오면 안 될까?’라는 트윗을 읽고는 “정말 좋은 생각”이라며 응수하기도 했다. 우리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국내 방송에서 정치 풍자가 코미디 소재로 본격 등장한 때는 1987년 민주화 이후부터다.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가 자신을 개그 소재로 사용해도 좋다고 하자 시사 코미디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김형곤씨는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등으로 무능한 정치인과 부패한 재벌을 신랄하게 비꼬았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풍자 개그가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현재의 정치·사회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표적인 코너가 KBS 개그콘서트의 ‘민상토론’이다. 지난 14일에는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정부의 미흡한 대처 능력을 풍자하는 내용이 전파를 탔다. ‘낙타 고기를 먹지 말라’는 등 보건복지부의 허술한 메르스 예방 지침을 꼬집었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보건을 모른다?” “서울시장은 잘했다?” “지자체가 나서 혼란만 키웠다?”는 등 특유의 말꼬리 잡기로 웃음을 줬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5일 행정지도인 ‘의견제시’를 결정했다. 불쾌감과 혐오감 등을 유발해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쳤다는 이유에서다. 한 편의 ‘코미디’가 따로 없다. 개그는 개그일 뿐인데 뭔가 찔린 게 있나보다. 이 정도 개그로 행정지도까지 받는 걸 보면 아직 우리는 멀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씁쓸하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한마당-김준동] 풍자 개그와 ‘민상토론’
입력 2015-06-27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