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부동산 시장-르포] ‘강남 불패’ 잠재운 실수요의 반란

입력 2015-06-27 02:22

“(재건축 아파트 매매가가) 언제 본격적으로 오를지는 더 두고 봐야 합니다. 사겠다는 분들이 없어서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대치동이라고 무조건 아파트값이 치솟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26일 오전 찾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S부동산중개사무소 김모(56) 대표는 아파트 가격 동향을 문의하는 고객과 통화 중이었다. 휴대폰을 내려놓은 김 대표는 “21년째 공인중개사 일을 하고 있지만 요즘처럼 강남 집값을 예측하기 힘든 때는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정부에서 부동산 경기를 띄우는 신호를 주니 호가는 오르고 있는 상황인데, 실제 활발한 거래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으로 ‘불패신화’를 기록했던 강남 부동산 시장이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이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주요 단지들의 매매가는 하락세를 보였던 2010∼2012년과 비교하면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과거 ‘잘나가던 시절’과는 비교가 힘들 정도로 겨우 꿈틀대는 수준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부동산 경기 활성화 정책에도 여전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완화하는 지난해 9·1부동산대책이 발표된 직후 강남구 개포동 주공1단지 전용면적 41㎡의 매매가 평균은 7억1000만원이었다. 하지만 대책 발표 9개월이 지난 6월 현재 매매가 평균은 7억1750만원으로 불과 1.1%인 750만원만 상승했다. 재건축 단지 가격의 바로미터로 통하던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도 같은 기간 전용면적 76㎡가 8억6500만원에서 9억원으로 4.0%(3500만원) 올랐다.

반면 마포구 성산동 성산시영아파트 전용 50㎡는 3억1750만원에서 3억5500만원으로 11.8%(3750만원) 상승했고, 노원구 월계동 미성아파트 전용 50㎡는 2억1000만원에서 2억4000만원으로 14.3%(3000만원) 뛰었다. 강북권 재건축 추진 단지들의 매매가 상승률이 강남을 압도하는 분위기다.

부동산중개사무소 관계자들은 강남권도 과거와 달리 투자 수요보다는 실수요가 시장 흐름을 주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개포동 L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실제 집에서 거주할 사람들이 입지조건 등을 따져보며 구매에 나서다보니 투자자금이 섣부르게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강남이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을 휘어잡던 옛 시절과는 달라진 것”이라며 “강남 아파트라면 무조건 팔리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다.

향후 재건축 사업이 탄력을 받는다면 강남 재건축 아파트 매매가는 전반적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폭등 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잠실동 M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최근의 상승세 전환이 장기적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며 “사업진행 속도가 빠른 곳은 입지가 좋기 때문에 투자가치가 있다고 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향후 추세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