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 인권이사회가 열릴 때면 이산가족, 피랍자 가족, 국군포로 가족들과 탈북민들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이들은 분단이 빚어낸 비극과 아픔을 하소연한다. 하물며 심각한 차별과 압박 속에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열악한 인권 상황과 좌절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인권보호는 평화 및 개발과 함께 유엔의 핵심 가치로 헌장에 명문화돼 있다. 2006년 인권이사회가 설치됨으로써 그간 경제사회이사회 산하 위원회에서 논의되던 인권보호 문제는 명실공히 유엔의 주류 어젠다로 격상됐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모든 유엔 활동에 ‘인권우선주의’를 주창했다.
유엔은 지난 2년 동안 북한 인권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2013년 3월 인권이사회는 ‘북한인권사실조사위원회(COI)’ 설치와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는 결의를 컨센서스로 채택했다. 마이클 커비 COI 위원장은 수백 명 피해자와의 면담, 공청회 증언을 통해 확보한 방대한 분량의 인권유린 사례를 분석했다. 작년 2월 발표된 COI 보고서는 정치범 수용, 납치, 자의적 구금, 표현의 자유와 거주 이전의 자유 침해 등 인권위반 사례를 지적하면서 “북한에서 심각하고 광범위하면서도 체계적인 인권 유린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기념비적인 문건이었다.
COI 보고서가 나오자 국제사회는 신속하고 강력하게 대응했다. 인권이사회는 COI의 권고에 따라 북한 인권 상황 모니터링과 인권 보호·증진을 위해 ‘유엔북한인권사무소’를 설치하고, 인권 유린의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결의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최초로 북한 인권문제를 정식의제로 채택했다. 미국 의회는 국무부로 하여금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실태와 인권탄압 책임자 명단을 파악해 보고하도록 했다. 유럽 국가들도 북한 인권문제를 비판해 오고 있다. 아프리카의 보츠와나는 COI 보고서 발표 직후 북한과 외교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이런 국제 여론의 변화는 인권문제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 왔던 북한에 압박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 3월 제네바에서 열린 인권이사회 고위급회의에 북한 외무상이 직접 참석해 북한 인권에 대한 유엔의 논의를 내정간섭이라고 비난한 것이 단적인 예다.
북한 인권문제는 남북 분단 70년의 비극적 현실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우리의 숙제다.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의 책사였던 에곤 바르 특임장관이 독일 통일을 위해 화해와 협력을 주창했던 ‘접근을 통한 변화’의 개념이나,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국제사회의 압박과 대화를 주문한 COI의 권고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 선언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 행복한 한반도를 위해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북한 인권문제는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성과 인권보호라는 보편성이 내재된 복합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년은 ‘권리장전’인 마그나 카르타가 제정된 지 800주년 되는 해다. 자이드 알 후세인 유엔인권최고대표는 지난주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마그나 카르타의 제정으로 법치가 인치를 대체하게 되었으며 인권은 법치의 중심에 위치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결의로 최근 서울에 설치된 ‘유엔북한인권사무소’가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유엔의 노력에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최석영 주제네바 대사
[기고-최석영] 제네바에서 보는 北 인권문제
입력 2015-06-27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