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공개적인 사퇴 압박에 궁지에 몰렸던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직을 유지하는 것으로 거취 문제가 정리됐다. 하지만 당청, 당내 계파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는 게 중론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법리상 해석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로 의미를 축소시켜 당장의 정면충돌은 피하고 보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여권 내 권력다툼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與 ‘유승민 지키기’로 결론=유 원내대표는 25일 의원총회가 끝나고 기자들과 만나 당청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두 차례 “송구스럽다”고 했다. 그는 “원내대표인 저와 청와대 사이에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의원들이 걱정도 하고 질책도 했다”며 “그 점에 대해선 제가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또 “제 자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당청 관계를 다시 복원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 취임 이후 경제와 안보 이슈에서 청와대와 다른 목소리를 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자세를 낮춘 것이다. 이는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여당 원내사령탑’을 콕 찍어 책임론을 제기한 데 대한 반응으로 풀이된다. 유 원내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은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예정된 날에 대통령이 거부권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점과 발언의 수위가 예상외로 셌다는 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유 원내대표는 친박(친박근혜) 일부 의원들의 자진 사퇴 요구는 “더 잘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고 더 열심히 하겠다”고 일축했다. 당내 대다수 의원들이 ‘재신임’으로 의견을 모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친박·야당 반발 산 넘어 산…‘유승민 판정승’ 해석도=유 원내대표는 당분간 당청 관계 회복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운신의 폭은 상당히 좁아졌다는 평가다. 우선 친박 의원들은 ‘유승민 흔들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이렇다 할 구심점이 없는 친박 입장에선 비박 지도부와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당내에서 친박이 힘을 쓰지 못하니 대통령이 직접 나서 판을 흔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유 원내대표 책임론을 제기했는데 당이 곧바로 재신임한 데 대해 유 원내대표의 판정승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여권 내에선 유 원내대표가 현실적으로 원내대표직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분위기도 읽힌다. 한 당직자는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와 함께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는데 어느 부처 장관이 원내대표 말을 들으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야당을 설득하는 일도 유 원내대표가 풀어야 할 숙제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윤석 원내수석부대표는 본회의에서 “유 원내대표의 말을 믿고 야당은 많은 양보를 했는데 한 입으로 두 말 하면 되느냐”고 반발했다. 이처럼 유 원내대표에 대한 야당 원내지도부의 신뢰가 깨진 상황이어서 향후 여야 협상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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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6-26 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