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원내대표 유지키로 했지만…

입력 2015-06-26 03:30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오른쪽)가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이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건너편에 앉은 김무성 대표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구성찬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공개적인 사퇴 압박에 궁지에 몰렸던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직을 유지하는 것으로 거취 문제가 정리됐다. 하지만 당청, 당내 계파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는 게 중론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법리상 해석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로 의미를 축소시켜 당장의 정면충돌은 피하고 보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여권 내 권력다툼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與 ‘유승민 지키기’로 결론=유 원내대표는 25일 의원총회가 끝나고 기자들과 만나 당청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두 차례 “송구스럽다”고 했다. 그는 “원내대표인 저와 청와대 사이에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의원들이 걱정도 하고 질책도 했다”며 “그 점에 대해선 제가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또 “제 자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당청 관계를 다시 복원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 취임 이후 경제와 안보 이슈에서 청와대와 다른 목소리를 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자세를 낮춘 것이다. 이는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여당 원내사령탑’을 콕 찍어 책임론을 제기한 데 대한 반응으로 풀이된다. 유 원내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은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예정된 날에 대통령이 거부권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점과 발언의 수위가 예상외로 셌다는 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유 원내대표는 친박(친박근혜) 일부 의원들의 자진 사퇴 요구는 “더 잘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고 더 열심히 하겠다”고 일축했다. 당내 대다수 의원들이 ‘재신임’으로 의견을 모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친박·야당 반발 산 넘어 산…‘유승민 판정승’ 해석도=유 원내대표는 당분간 당청 관계 회복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운신의 폭은 상당히 좁아졌다는 평가다. 우선 친박 의원들은 ‘유승민 흔들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이렇다 할 구심점이 없는 친박 입장에선 비박 지도부와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당내에서 친박이 힘을 쓰지 못하니 대통령이 직접 나서 판을 흔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유 원내대표 책임론을 제기했는데 당이 곧바로 재신임한 데 대해 유 원내대표의 판정승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여권 내에선 유 원내대표가 현실적으로 원내대표직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분위기도 읽힌다. 한 당직자는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와 함께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는데 어느 부처 장관이 원내대표 말을 들으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야당을 설득하는 일도 유 원내대표가 풀어야 할 숙제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윤석 원내수석부대표는 본회의에서 “유 원내대표의 말을 믿고 야당은 많은 양보를 했는데 한 입으로 두 말 하면 되느냐”고 반발했다. 이처럼 유 원내대표에 대한 야당 원내지도부의 신뢰가 깨진 상황이어서 향후 여야 협상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