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신경숙씨 표절 논란을 계기로 드러난 한국문학계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번 표절 논란은 신씨 개인의 작가윤리 문제를 넘어 문학 표절의 기준 부재, 거대 문학출판사들의 권력화, 비평의 실종, 문학의 상업화 등 오래 누적된 문제들을 일시에 폭발시켰다.
문인 단체들은 문학작품의 표절 기준을 확립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한국작가회의는 지난 23일 긴급 토론회를 개최한 데 이어 표절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25일 밝혔다.
정우영 작가회의 사무총장은 “이번 사태 이후에도 표절이네 아니네 하면서 이전처럼 논란만 할 수는 없다”면서 “표절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한 논의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작가회의는 토론회 직후 상임집행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의견을 모았으며, 다음 달 25일로 예정된 정기이사회에 이 문제를 주요 의제로 상정할 예정이다.
정 사무총장은 “지금까지 문학계에서는 한 번도 표절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려는 논의가 없었다”며 “이참에 내부 논의에서 시작해 전문가 의견도 듣고 논문도 찾아보고 음악 등 다른 분야는 어떻게 하는지 참고하면서 기준점을 찾아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최대 문인 단체인 한국문인협회는 표절 문제를 다룰 ‘문학표절문제연구소’(가칭) 설치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이미 공표했다.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역시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최소한의 문학 표절 기준을 제정할 필요성이 제기됐다”면서 “한국문인협회와 출판사 등 관련 단체와 연계해 기준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출판사들의 대응도 주목된다. 사태 이후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문학동네도 25일 저녁 ‘독자 여러분에게 문학동네가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문학권력을 비판해 온 평론가들과 자사 편집위원들의 좌담회를 제안했다. 문학동네는 신씨 책을 가장 많이 낸 출판사로 창비와 함께 문학권력의 두 축으로 지목돼 왔다.
문학동네는 ‘편집위원 일동’ 명의로 작성된 이날 발표문에서 “일회적인 해명으로 그치거나 막연한 개선을 약속하는 것은 책임 있는 자세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으며, 보다 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조치를 강구하기로 했다”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언론을 통해 문학동네가 경청해야 할 말씀을 들려주신 권성우 김명인 오길영 이명원 조영일 평론가가 좌담의 장에 참석할 것을 청한다”고 말했다.
또 “좌담에서는 소위 ‘문학권력’에 실체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또 어떻게 개선되어야 할 것인지 등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길 바란다”면서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고칠 것은 고치겠다”고 밝혔다. 좌담이 열리면 그 내용을 계간 ‘문학동네’ 가을호에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창비 역시 후속 조치를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창비노동조합은 24일 조합원총회를 열고 회사에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해 놓은 상태다. 창비는 지난 18일 강일우 대표 명의의 사과문에서 내부 시스템 재점검과 필요한 후속 조치를 약속한 바 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문인단체·출판계 ‘표절 자정대책’ 잇따라
입력 2015-06-26 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