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독선” “막말 곱빼기”… 격앙된 野, 朴대통령 성토

입력 2015-06-26 03:39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왼쪽)가 25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같은 당 안철수 의원의 말을 듣고 있다. 구성찬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회 의사일정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야당은 6월 임시국회에서 메르스 관련 법안만큼은 처리한다는 방침이지만 다른 모든 의사일정을 거부키로 해 국회가 사실상 ‘올 스톱’될 공산이 크다. 여야뿐 아니라 입법부와 행정부의 갈등도 최고조로 증폭되는 모양새다.

새누리당은 의원총회에서 ‘국회법 개정안 재의결 불가’ 방침을 정했다. 김무성 대표는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께서 어렵고, 고뇌에 찬 결정을 한 것은 당이 절대 존중한다”면서 “(다만) 의원들의 입법행위도 존중돼야 하기 때문에 유승민 원내대표가 의원들 다수의 뜻을 받아 재의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고 설명했다. 재의결은 재적의원(298명)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가능하다. 160석으로 전체 의원 수의 과반을 확보한 새누리당이 재의결을 하지 않으면 국회법 개정안은 사실상 자동 폐기된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법 개정안 재의 일정을 잡을 때까지 메르스 관련법을 제외한 모든 의사일정 협상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재의를 요구한 뒤 기자들과 만나 “현재로서 (국회법 개정안) 부의 날이 정해지기 전에는 한 발도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본회의 직전 로텐더홀에서 규탄대회도 열었다. 의원들은 “오만한 대통령 불쌍한 새누리당 국회법 재의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문재인 대표는 이 자리에서 “대통령의 적반하장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며 “대통령 발언은 의회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을 부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 대표는 앞서 기자들과 만나서도 “국민의 고통을 덜어드리는 게 정치이지 이건 정치가 아니다. 정치는 사라지고 대통령의 고집과 독선만 남았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도 “국민 여러분, 오늘은 국회 역사에 남을 슬픈 날”이라며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한마디에 여당 의원이 숨을 죽이고 국회의원 직위를 포기하고 국회 지키기를 포기한 슬픈 날”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총에서 박 대통령 발언에 대해 “저보고 막말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완전히 막말의 곱배기”라고도 했다.

추미애 최고위원은 규탄사에서 “메르스로 국가가 뚫렸다. 이 혼돈의 와중에 대통령은 국회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며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대국민 쿠데타이자 실질적인 국회 해산 요구”라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이 정쟁 바이러스의 슈퍼 전파자가 된 날’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결국 재의결을 요구하는 야당과 이를 거부한 여당 사이의 정면충돌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6월 임시국회는 물론 향후 정치일정이 전면 중단될 위기에 빠졌다. 정부·여당이 경제 활성화를 위해 추진 중인 서비스산업발전법, 관광진흥법, 크라우드펀딩법 등은 당분간 표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 갈등뿐 아니라 행정부와 입법부 간 갈등도 분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논란이 정부의 권한인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수정·변경 권한을 강화하려다 불붙었기 때문이다. 정 국회의장은 중재안까지 마련해 정부에 이송했지만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회를 강한 어조로 비난해 체면을 구겼다.

입법부와 행정부 간 힘겨루기가 연말까지 장기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장 8월까지 정부 예산·결산이 예정돼 있고, 9월부터는 내년도 예산 심의를 위한 정기국회가 예정돼 있어서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