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정국’ 파장] 당·청 살린 봉합… ‘지도부 사퇴’ 불씨는 여전

입력 2015-06-26 02:22
정의화 국회의장이 25일 국회에서 취재진으로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에 대한 질문 공세를 받고 있다. 구성찬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로 새누리당 내부에 계파 투쟁의 총성이 울렸지만 초반전은 예상외로 덤덤하게 끝났다.

새누리당은 25일 5시간가량 계속된 마라톤 의원총회를 통해 청와대의 뜻대로 법안을 자동 폐기하고 대신 유승민 원내대표는 사실상 재신임하는 쪽으로 결론냈다. ‘분란 봉합’에 방점이 찍힌 의사결정이다. 겉으로 보면 당청 모두를 살린 ‘윈윈’ 게임을 벌인 셈이지만 원내지도부 사퇴론이 공식 제기되면서 내홍의 불씨는 남아 있다.

◇격론 끝에 무난한 결론=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며 여당 원내지도부에 대한 날선 비판을 쏟아내자 새누리당은 충격에 휩싸였다. 예상을 뛰어넘는 거친 수위에 곧장 유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까지 도마에 올랐다.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도 서청원·김태호 최고위원 등이 유 원내대표를 향해 책임론을 제기했다. 1시간가량 진행된 비공개 회의 때 최고위는 대통령의 뜻을 존중하기로 결론을 모은 뒤 이를 오후 의총 안건으로 올렸다. 원내지도부는 즉각 대책 회의에 나섰고 당 재선 의원들도 긴급 비공개 회동을 갖고 해법을 논의했다.

오전 내내 긴장감이 흘렀지만 막상 의총이 시작되자 “청와대와 당이 대결하면 둘 다 끝장”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분위기는 쉽게 모아졌다고 한다. 40명이 발언했지만 대부분 박 대통령의 뜻대로 국회법 개정안은 폐기돼야 한다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으로 인한 국민적 불안감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여권이 권력다툼에 빠졌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이 같은 공감대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법안 폐기 방식을 놓고 일부 의원들이 “재의결을 통해 당당히 부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대다수는 재의결 절차를 밟지 않고 자동 폐기하자는 의견을 내놨다.

◇원내대표 재신임했지만 내홍은 남아=의총에서는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비주류 의원들 사이에서 유 원내대표에 대한 책임론 공방도 벌어졌다.

김태흠 의원은 “유 원내대표는 국회법 개정안을 비롯해 지금까지 당내 의결조율 과정 미흡, 대야 협상능력 부재, 월권적 발언 등으로 당정청 공조에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며 “상처를 덮고 가면 곯게 돼 치유불능 상태가 된다”고 사퇴를 촉구했다. 김현숙 의원도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적 요소로 계류돼 있었으나 법안 처리 직전 의원총회에서 유 원내대표는 ‘아무 문제없이 통과될 법’이라고 보고해 법안 통과에 결정적인 근거를 제공했다”며 “정확한 해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강석호 김성태 김학용 김세연 김영우 황영철 의원 등 비주류 성향 의원들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지 특정인에게 책임을 물을 상황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폈다. 청와대를 향한 불만도 나왔다. 한 비주류 의원은 “대통령이 오히려 계파 갈등을 조장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면서 “대통령이 여당 의원들이 직접 뽑은 원내대표가 싫다고 하면 그냥 나가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대다수 의원들이 책임론을 제기하지 않았고, 유 원내대표가 유감의 뜻을 밝히면서 사퇴론 주장은 큰 힘을 받지 못했다. 김무성 대표도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유 원내대표에 대해) 사퇴 요구를 한 의원도 몇 명 있었지만 절대 다수가 봉합하자는 의견이었다”며 “(유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사과할 일은 사과하라고 했고, 유 대표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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