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法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 노조 설립 가능” 판결

입력 2015-06-26 02:28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원들이 2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불법 체류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노동3권을 보장한 판결을 환영하며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 설립을 두고 벌어진 지난 10년간의 법정공방은 노동 관련법에 의해 보호받는 ‘근로자’의 범위를 설정하는 과정이었다. 취업 자격이 없는 이주노동자를 근로자로 볼 수 있는지를 두고 팽팽한 두 입장이 맞섰다. 대법원은 취업 자격 유무를 떠나 실제 근로를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동3권을 보장받는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근로자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이주노조가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불법체류가 근로자 기준 될 수 없다”=이주노조가 2005년 제기한 노조 설립 반려처분 취소소송은 대법원의 최장기 미제사건이었다. 2007년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됐지만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던 대법관들은 심리에 무려 8년4개월을 들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제적 기준과 판례를 수집·검토하고 시대 상황을 충실히 고려하느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해외 사례를 분석해 외국인 근로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게 국제적 기준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유입되는 미국과 일본, 유럽 국가들은 취업 자격과 관계없이 이주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는 판례를 내놓고 있다. 불법체류자의 취업을 제한하고 행정조치를 통해 강제 퇴거시키는 점은 우리나라 상황과 같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법상의 근로자 지위를 부여해 상대적 약자인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을 길을 열어두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 보장을 강화하면서 국가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다문화가정과 외국인 체류자가 증가하는 상황도 판결에 반영됐다. 현재 중소기업 인력난 등으로 외국인 고용은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외국인 체류자는 2005년 75만여명에서 2014년 180만여명으로 늘었다. 불법체류자 또한 2013년 18만여명에서 지난 1월 21만여명으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외국인의 체류나 고용을 둘러싼 분쟁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분쟁의 한쪽 당사자인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민일영 대법관만 유일하게 근로자의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취업 자격 획득이 전제돼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다만 대법원은 이 판결이 불법체류 근로자의 체류를 합법화하거나 취업 자격을 부여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이주노조가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와 같이 노조법에서 금지하는 성격의 조직이라면 정부가 설립을 다시 반려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노동계 “늦었지만 환영” vs 경영계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대법원 판결을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는 상반된 입장을 내놨다. 이주노조는 25일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확인받는 데 10년이나 걸렸다”며 “너무 늦었지만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노총은 “이주노동자 처우 개선의 가능성이 커졌다”고 논평했다. 불법체류를 약점 삼아 열악한 처우를 강요하는 일부 사업주의 요구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대응할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반면 경제단체들은 ‘산업현장의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불법체류 외국인의 노동3권 자체를 존중한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적인 산업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사정이 열악한 중소기업에는 타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현수 노용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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