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에는 원인 바이러스에 대한 무지가 큰 몫을 했다. 그만큼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MERS-CoV)에 대한 기초연구가 안 돼 있었다는 뜻이다. 국내에 메르스 전문가는 전무한 실정이다. 문제는 메르스 같은 신종 감염병 창궐이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점이다.
특히 동물로부터 사람에게 전파되는 ‘인수(人獸)공통전염병’에 대한 우려가 크다. 전문가들은 향후 유행할 신종 전염병을 예측해 기초연구를 튼튼히 해놔야 실전에서 ‘선제적 대응’이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제2, 제3의 메르스 사태를 막으려면 공중보건과 의료 대응 못지않게 연구·개발(R&D)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다.
◇인수공통전염병 120종…30∼40% 국내 발병 가능=신종 감염병은 1970년대 이후 새롭게 발견된 감염성 질환을 말한다. 기존에 있었지만 변형돼 새로 유행하는 ‘변종’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대부분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세균), 곤충 매개 질병이다. 사스와 신종플루, 에볼라, 메르스, 중증혈소판감소증후군(SFTS), 항생제내성 슈퍼박테리아(장출혈성대장균 O157) 등이 대표적이다.
KAIST 의과학대학원 면역 및 감염질환 연구실 신의철 교수는 “신종 감염병 중 큰 유행을 일으키는 건 바이러스인 경우가 많다.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겨져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은 경우 치사율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에볼라나 메르스가 이에 해당한다.
근래 유행한 고병원성 신종 바이러스들은 인수공통전염병이 대부분이다. 사스(사향고양이), 에볼라(원숭이·과일박쥐), 신종 인플루엔자(조류·돼지) 등이 모두 동물에게서 바이러스가 전파된 것으로 확인됐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낙타가 대표적 숙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연구결과 본래 박쥐에 존재하던 바이러스가 낙타로 옮겨가면서 사람에게도 질병을 일으켰다는 설이 유력하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최근 보고서 ‘인수공통전염병 연구동향’에 따르면 인간과 관련 있는 인수공통전염병은 지구상에 120종에 달한다. 이 가운데 30∼40%가 국내에서 발병 가능한 것으로 예측됐다.
◇에볼라·뎅기열·치쿤구니아열 등 국내 유입 가능성 높아=신종 감염병은 변종 병원체의 등장, 항공 교통 발달, 지구온난화, 고령화로 인한 면역저하자 증가, 무분별한 자연개발, 항생제 남용에 따른 내성균 증가, 바이오테러 등의 감염 경로를 통해 앞으로도 인류를 위협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신종질병대응기술융합클러스터 김범태(한국화학연구원 박사) 단장은 “에볼라는 아직 국내에 발생하지 않았지만 유입 가능성이 높다. 또 모기 등 곤충 매개 바이러스, 예를 들면 뎅기열·치쿤구니아열 등의 발생이 증가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했다. 실제 지난해 제주도에서 베트남 뎅기열 매개 모기가 처음 발견됐다는 보고가 있었다. 기후변화로 제주도 기온이 올라가면서 아열대 모기가 서식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신 교수는 “뎅기열 웨스트나일열 치쿤구니아열 등은 해외에서 유입될 가능성이 높지만 사람 간 전염은 거의 없어 대유행 우려는 낮은 편이다. 하지만 향후 메르스가 또 유입될 수 있고 인체 감염을 일으키는 새로운 변종 인플루엔자가 큰 유행을 낳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밖에 야생 진드기(참소진드기)에 의해 바이러스가 옮는 SFTS도 2013년 국내에서 처음 발견돼 매년 수십명씩 사망자를 내고 있다. 올 초에는 SFTS가 사람 간에 전파된 사례가 처음 보고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연구·개발 인프라 갖춰야=이처럼 다양한 신종 감염병 창궐이 예상되지만 우리나라의 감염병 기초연구는 미흡하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룬다. 2014년 미래창조과학부 ‘국가전략기술수준 평가’ 결과를 보면 국내 감염병 대응 기술은 최고인 미국의 75.5% 수준에 그친다. 기술 항목별로도 4∼5년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이우송 책임연구원은 “고위험 병원체 연구를 위한 기반시설 구축 수준도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고전염성 바이러스 연구에 필요한 최고등급의 생물안전차폐시설4등급(BSL-4)은 국립보건연구원에서 추진 중이지만 아직 전무하며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인 3등급도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보건의료 R&D 예산이 ‘경제성과 유행성’ 논리에 발목 잡혀 지연되거나 체계적으로 지원되지 않아서다. 관련 질병의 조기 진단 및 백신·치료제 개발도 더딜 수밖에 없다. 제약사 입장에선 유행 질병의 백신 개발에 따른 수익성과 비용, 개발 기간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신 교수는 “모든 신종 바이러스를 연구할 수는 없지만 꼭 필요한 것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초기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며 “드문 바이러스라고 해도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메르스 사태에서 당장 시급한 건 공중보건 대응과 의료적 대응이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연구·개발과 연계를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단장은 “신종 감염병은 범국가적 로드맵을 구축하고 정부 주도의 과감한 R&D 투자를 통해 선제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게 필수”라고 강조했다. 김 단장은 아울러 “신종 감염병 연구를 위해선 병원과의 연계가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삼성서울병원도 메르스 환자 치료 경험이 많은 만큼 공동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관련기사 보기]
[메르스 사태 똑바로 보자] 제2 메르스 또 오는데… 기초 연구부터 제대로 해야
입력 2015-06-26 0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