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불청객 백로를 어쩌나… 충북 청주남중 뒷산에 수천마리 둥지

입력 2015-06-26 02:20
25일 충북 청주 서원구 남중학교 급식소 건물 뒤편 숲에 백로가 떼 지어 앉아있다. 작은 사진은 백로들의 배설물로 나무가 고사한 모습.

푸른 소나무 숲이 목련꽃이 핀 것처럼 백로로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백로 배설물을 뒤집어쓴 소나무 수십 그루는 이미 고사했다. 백로가 먹다 남긴 생선과 백로 새끼 사체가 썩으면서 풍기는 악취가 진동했다. 이곳에선 백로가 길조의 상징이 아니었다.

25일 오전 충북 청주남중 급식소 건물 뒤편 야산에는 백로 수천 마리가 둥지를 틀고 있었다. 3년 전부터 백로가 하나둘 모여들더니 집단 서식지로 만들었다.

학생들은 밤낮없이 울어대는 백로 소리에 여름철에도 교실 창문을 닫은 채 수업을 하고 있었다. 이 학교는 백로가 유발하는 소음과 악취로 고통받고 있었다. 백로 깃털이 학교 급식소와 교실로 날아드는 상황도 우려된다. 급식소 조리사들은 방충망을 뚫고 들어온 작은 깃털들이 음식물에 침투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지난 4월 필리핀에서 온 백로들은 5월부터 집을 짓고 짝짓기를 하고 가을인 9월에 모여 고향으로 돌아간다. 전문가들은 무심천 등 주변에 먹잇감인 물고기가 많아 이곳에 무리가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로가 서식한다는 것은 백로 번식지 주변 습지와 하천 생태계가 건강해 먹이활동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는 곳에 둥지를 튼 백로는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백로의 배설물은 산성이 강해 나무가 고사하기도 하고 백로가 유발하는 소음과 냄새 등은 주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여기에선 백로는 길조가 아니라 피해만 주는 ‘흉조’로 인식된다.

결국 이 학교 학부모회와 학교운영위원회는 관계 당국에 교육환경 개선과 위생관리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고 있지만 간벌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우선 1주일에 3차례 방역소독을 실시하고 사체를 수거하기로 했다.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오경석(40) 정책국장은 “백로 집단 서식지가 학교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학생들에게 환경보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교육적인 목적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새 박사’로 유명한 윤무부(74) 경희대 명예교수도 “백로가 인간들에게 병을 옮긴 기록이나 문헌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며 “간벌을 하더라도 번식기가 끝나는 8월말에 해도 늦지 않는다”고 전했다.

청주남중 관계자는 “학생들의 교육환경 개선과 백로 서식지를 보호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가 어려워 난감하다”고 전했다. 청주=글·사진 홍성헌 기자 ad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