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사과와 배상을 외면하는 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한 명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김연희(사진) 할머니가 24일 오후 10시쯤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25일 밝혔다. 향년 83세.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숨을 거두기는 이달 들어서만 세 번째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49명뿐이다.
김 할머니는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나 5세 때 서울로 올라왔다. 국민학교 5학년이던 1944년 일본인 교장에게 차출돼 일본으로 끌려가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김 할머니는 일본 시모노세키를 거쳐 도야마현에 있는 항공기 부속 공장에서 약 9개월간 일했다. 이어 아오모리현 위안소로 끌려갔다. 7개월가량 고초를 겪다가 광복을 맞은 뒤에야 겨우 배를 타고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위안소의 악몽이 후유증으로 남아 정신병원에서 치료받기까지 했다. 김 할머니는 평생 혼자 지내다 눈을 감았다.
지난 11일 김외한·김달선 할머니가 세상을 등지는 등 이달 들어서만 3명이 생을 마감했다. 2011년에는 한 해에 16명이 별세했다. 2012년 6명, 2013년 4명, 지난해 2명 등 평생의 한을 풀지 못하고 눈을 감는 할머니들이 늘고 있다. 생존 49명의 평균 연령은 89세다. 한국 여성의 평균수명보다 네 살이나 많다. 90세를 넘긴 할머니도 19명이나 된다.
정대협 관계자는 “김연희 할머니는 지난 몇 년간 말씀조차 못 나눌 정도로 편찮으셨다. 다른 할머니들도 노령이다 보니 갑자기 떠나는 분이 많다. 생활이 어렵고 건강까지 안 좋은 분이 많다”고 말했다.
나눔의 집에서 지내는 하수임(85) 할머니는 올 들어 걷지 못하고 있다. 김정근(85) 할머니는 중증 치매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광주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생존 피해자 49명 중 거동이 가능한 분은 15명 정도”라며 “대부분 노인성 질환과 장애를 앓고 있다”고 전했다.
종전 70주년,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은 올해 피해 할머니들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크다. 안 소장은 “할머니들은 역대 정권마다 ‘우리 문제를 꼭 얘기해 달라’고 당부하셨다”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이 이번 정부에서 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184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의 짐을 내려놓자고 말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23일에는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나눔의 집 등으로 구성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미국 소송 실행위원회’가 일본 정부의 사과·배상을 요구하는 집단소송을 미국 연방법원에 제기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위원회는 “이제 일본의 반성을 기다릴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얼마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전수민 홍석호 기자 suminism@kmib.co.kr
당신의 눈물은 어쩌라고… 위안부 할머니 또 스러지다
입력 2015-06-26 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