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 대통령의 거부권 관련 對국회 발언 너무 거칠다

입력 2015-06-26 00:40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작심한 듯 정치권을 강력 비판하고 나섰다.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 ‘국민의 심판’을 힘주어 언급했다. 국회를 향한 선전포고에 다름 아니다.

박 대통령은 여야 정치권에 섭섭함이 많을 것이다. 야당은 사사건건 국정에 발목을 잡았고, 여당은 야당을 설득하는 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온 게 사실이다. 특히 새누리당 원내지도부가 행정입법의 수정·변경을 강제토록 한 국회법 개정을 수용한 데 대해 강한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초강경 발언에는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여당 내 차기 대선주자들의 홀로서기 시도를 차단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정치권 전체와 정면대결을 불사하는 듯한 모습은 볼썽사납다. 국민들은 지금을 비상시국으로 인식하고 있다. 메르스 공포가 여전한 데다 경제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위기 국면이다. 대통령으로서 국력 총집결을 호소해도 모자랄 판에 정쟁을 격화시킬 수 있는 발언을 서슴없이 행한 것은 무책임해 보인다. 국정 지지율이 30%선에 불과한 상황에서 나온 박 대통령의 정치권 공세는 국민을 불안하게 할 뿐이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정부와 국회가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법 절차에 따라 처리하면 그만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개정안 이송 전 여야를 설득해 ‘요구’를 ‘요청’으로 바꾸는 성의를 보였음에도 대통령과 정부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면 그걸 존중해주는 게 옳다.

새누리당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국회법 개정안 재의결 불가’ 방침을 정했다. 당·청 관계를 감안한 불가피한 결정이다. 이에 따라 국회법 개정안은 사실상 자동 폐기됐다. 이는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당장 국회 일정 중단을 선언하는 등 여의도 정국은 격랑으로 빠져들었다. 그렇다고 야당이 60여건에 달하는 법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를 막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때일수록 여야는 냉철하게 생각하고 매듭을 풀 고리를 찾아야 한다. 엉뚱하게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