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시절 박근혜 대통령은 결코 ‘돌아가는’ 법이 없었다. 한번 뱉은 말은 꼭 책임을 져야 하고, 이런저런 ‘정치공학’에 따라 말을 바꾸는 걸 무엇보다 싫어했다.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도 소신은 여전했다.
특히나 대일(對日) 관계에서 박 대통령의 ‘돌직구 행보’는 두드러졌다. 기회 있을 때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의 수정주의 역사관을 정면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2013년 2월 25일 취임식에서는 “진정한 우호관계 구축을 위해선 과거 상처를 치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고, 그해 3·1절 기념식에선 “가해자·피해자의 입장은 천 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3·1절에선 “과거사를 부정할수록 초라해지고 궁지에 몰린다”고, 올해 신년 기자회견에선 “의미 있는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선 일본의 자세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거침없이 일본 비판에 나서자 외교가는 물론 정가에서조차 “도대체 대통령과 정부는 뭘 하고 있느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과거사 문제 해결 없이는 관계 정상화도 없다’는 박 대통령의 대일 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요구였다. 양국 교역 규모가 급격히 줄고, 이른바 ‘미·일 신(新)밀월시대’가 도래했는데도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도모하지 않는다는 주장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박 대통령의 대일 외교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몇 년 사이, 국제 외교무대에서는 엄청난 변화가 진행됐다. 처음으로 일본 우익 정부의 왜곡된 과거사 인식이 세계의 주요 사안으로 다뤄지게 됐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세계 2강(G2) 미·중의 주요 관심사이자 유엔의 주제가 됐다. 독일이 나서서 아베 신조 총리와 일본 각료들의 과거사 반성을 촉구하는가 하면, 미국 의회에선 “아베 정부가 이참에 확실하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내놓고 있다.
아베 총리 개인의 변화를 보면 180도 달라졌다고 할 만큼이나 극적이다. 취임 초창기 그는 “위안부의 존재 여부는 재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일제 강점에 대해서도 뻔뻔스럽게 “(한국이 우리한테) 침략이었다고 하는데 그 문제는 역사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지난 4월 방미 과정에선 “위안부는 인신매매의 희생자”라고 했다. 일본 정부의 위안부 동원 책임을 인정한 고노 담화와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을 담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바꿨다.
아베 총리가 이처럼 꼬리를 내린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의 압박이었다. 과거사 도발로 바로 이웃 ‘동맹국’과의 관계를 악화시켜선 안 된다는 요구였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압박 뒤에는 바로 박 대통령의 ‘원칙’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이 아무리 “너무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한·일 관계를 개선하라”고 해도 박근혜정부는 “과거사가 먼저”라는 기조를 유지했다.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일이던 22일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아베 총리에게 화해 제스처를 취했다.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한 것이다.
국내외 언론들은 앞 다퉈 한·일 관계 정상화 궤도 본격 진입이라는 제목으로 이를 보도했다. 하지만 ‘내려놓는다’는 말에 더 무게를 두고 ‘만들어가자’는 말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이 말 속에서도 일본의 책임과 상응 조치를 염두에 뒀다. 여전히 자신의 원칙을 바꾸지 않은 셈이다. 아베 총리가 ‘진짜’ 변했는지 살펴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8월 15일을 전후로 나올 ‘아베 담화’를 통해서 말이다.
신창호 정치부 차장 procol@kmib.co.kr
[세상만사-신창호]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
입력 2015-06-26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