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봉사하시는 집사님, 한식 자격증 12번 도전 끝에 요리사 모자 썼드래요

입력 2015-06-27 00:09
강원도 오지 영월읍 문산리 문산교회 정의녀 집사. 심심산골교회에서 밥봉사하다 ‘셰프’가 됐다. 11전12기로 조리사 시험에 합격한 것. 영월 ‘소망어린이집’ 조리사가 된 정 집사가 지난 23일 어린이집 사무실에서 성경책을 두고 지난날을 얘기하고 있다. 영월=전호광 인턴기자
정의녀 집사를 11전12기로 이끈 김영동 목사.
문산교회.
소망어린이집 현관 앞에 선 정의녀 집사.
‘목사님∼저희∼기도 부탁있서요∼네 마음에 이는∼부담감기(과)∼짐을 주님 앞에∼네러노코(내려놓고)∼ 편한 마음과∼기도하는 마음∼으로∼시헙(험)보게 하소서∼목사님∼아침 일직(찍)∼죄송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시니 주님께 맡기고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가세요. 중보기도 중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증거처럼 은혜의 단비도 내리잖아요. 아∼∼∼자! 파이팅!!!’



‘웰컴투 동막골’ 찍은 첩첩산골 집사님

산골교회 집사와 목사님 간 문자입니다. 철자가 ‘삐뚤빼뚤’한 위 문자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문산리 문산교회 정의녀(43) 집사가 보낸 거고, 아래는 당시 문산교회 김영동 목사(현 평창 산돌교회)의 답입니다. 딸뻘 되는 집사님에게 사랑을 주시는 마음이 묻어납니다.

이 문자는 2012년 6월에 주고받은 것입니다. 그해 김 목사는 감리교 총무 등 15년 행정 목회를 접고 그 산골에 현장 목회를 갔던 거지요. 영월읍 시내에서도 18㎞ 떨어진 문산리는 한마디로 ‘오리지널 강원도’였습니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 촬영지가 교회 뒷산 성안산입니다. 1175m 높이 상방산이 성안산을 안고 있는 동네입니다.

문산리는 눈 쓸고 잠깐 뒤돌아보면 쓴 만큼 또 쌓입니다. 김 목사가 “눈이 키만큼 온다”는 동네분들 말씀을 반쯤 농으로 알고 있다가 폭설을 실감해야 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읍내 나가려면 1시간 산길 걸어 나가야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터널이 두 개나 뚫려 상전벽해 됐습니다.

정 집사는 문산리가 고향입니다. 문산리는 영월 동강과 깊은 산이 막은 옹색한 동리죠. ‘∼드래요’ 하는 강원도 사투리 어미를 지금도 실감나게 들을 수 있습니다. 정 집사는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입니다. 산골 형편 뻔하니 배움이 쉽지 않았죠. 고향 떠나본 적이 없던 그녀는 순박한 고향 사람 만나 결혼을 일찍 했고 먹고살기 위해 서울 정릉동에 정착해 이것저것 해봤으나 팍팍한 살림살이 별반 나아지는 게 없었죠. 그래서 90년대 초 귀농했습니다.

정 집사 내외는 토마토와 고추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녀는 산골 촌 아낙이 됐습니다. 해도 해도 일은 끝이 없었고요. 한데 토마토 농사는 수해로, 고추 농사는 고추병으로 흉작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것도 이태 연속 망쳤어요. 빚을 져야 했고요. 정 집사는 엉엉 울면서 살았습니다. 미세변화신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들까지 있었으니 그 20대 엄마의 삶이 오죽 힘들었겠어요.



“맑은 물은 알겠는데 정수는 머드래요?”

그 어느 해. 문산교회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마을 잔치를 벌였습니다. 당시 마을 주민이었던 정 집사는 다섯 살 아들을 데리고 만두 빚는 걸 도와주게 됐어요. 그리고 생전 처음 교회 식구들과 어울리게 됐습니다. 음식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고요. 교회가 이상한 곳이 아니구나 싶었답니다. 그 뒤 손위 동서의 권유 등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20여 가구의 작은 동리인데 교인이 많을 리 없죠. 전래 무속이 강해 다섯 안팎이었습니다. 목사님 가족 빼면 예배의 힘이 빠져 버리는 곳이죠.

정 집사는 천성이 밝습니다. 우는 것조차 밝게 보이는 분입니다. 배움이 짧아 성경 읽기에 애로를 느껴도 밝고 씩씩하게 교회를 섬겼습니다. “지금도 새벽기도 가서 예배당 십자가를 보면 가슴이 울렁울렁 거려요” 하는 분입니다. 이 산골 아낙, 태어나 처음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직분 ‘집사’죠. 더욱 충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고요.

하지만 ‘마음이 정한 대로’(고후 9:7) 물질을 바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흉작에 보리 서 말이 궁할 판이니까요. 그 무렵 시골 교회가 허름한 샌드위치 패널 걷어내고 성전 건축에 들어갔습니다. 작은 평수 짓는데도 공사를 하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2∼3년이 걸렸죠. 정 집사는 가진 게 빚이니 ‘마음이 정한 대로’ 할 수가 없었어요. 부끄러웠답니다.

어느 날 정 집사는 당시 목회자 권용주 목사(현 원주제일교회)를 찾아가 고백합니다.

“목사님, 이렇게 성전 건축하시는데 저는 부끄럽게 드릴 것이 없어요. 목사님 부탁이 있습니다. 제가 밥을 잘합니다. 성전 건축하는 동안 인부와 교회 식구들 드릴 밥을 제가 맡아서 하면 안 될까요.”



“드릴 게 없어 밥 봉사하고 싶어요”

정 집사는 이날 이후 밥 봉사를 합니다. 자신의 집 쌀독을 열어 고슬고슬한 밥을 짓고, 동리 주변 널린 나물을 채취해 ‘참기름 팍팍 넣어’ 무침을 내놓습니다. 강원도 산골 소녀 출신 주특기 죄다 발휘해 ‘셰프(요리사)’ 실력 보인 겁니다. 사람들이 미어지게 밥과 반찬을 떠 입에 넣고 엄지를 치켜세울 때면 날아갈 것 같았답니다. 그러기를 4∼5개월이었죠.

자신의 재능을 알아준 사람들의 칭찬에 용기를 얻은 정 집사는 ‘조리사’ 도전 대장정에 나섭니다. 권 목사와 전초롱 사모의 전폭적인 지원이 시작됐고요. 특히 전 사모는 정 집사와 영월여성회관 요리사 과정을 함께 밟으며 밀어줍니다. 권 목사는 읍내 동부감리교회 부설 소망어린이집 원장인 김경희 장로에게 부탁해 어린이집 주방 보조로 실습도 하게 해주고요.

한데 마음은 앞서나 현실은 통곡의 벽처럼 암담합니다. ‘셰프’ 아무나 하나요. 공인 ‘한식조리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개업이나 취업을 할 수 있죠. 정 집사는 권 목사 부부의 지도를 받아가며 조리사 자격 취득 시험 도전에 나섭니다. 문제는 필기시험. 보는 족족 낙방. 100점 만점 40∼50점대. 그래도 정 집사는 불굴의 의지로 도전합니다. 강원도 원주와 강릉, 경북 안동 등서 치러지는 시험을 쫓아다니며 ‘꿈의 셰프’가 되고자 문을 계속 두들깁니다. 새벽기도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 간구하고요.

‘정수(淨水)’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 ‘비말(飛沫)’

수험서를 아무리 읽어도 정 집사는 전문용어를 이해를 못합니다. 쉽게 설명해도 방언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이 와중에 정 집사를 이끌어주던 목사님 내외가 원주로 부임을 갑니다. 평생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았던 정 집사에게 자격증 시험은 무리였나 봅니다.

“내가 내 분수를 모르고 살았던가….”

그녀는 울며 꿈을 포기했습니다. 새로 부임한 김 목사는 전임자로부터 정 집사 얘기를 들었습니다. ‘교회 일꾼’이 실족해 교회조차 오기 싫어하는 걸 아신 거죠.

“모르는 거 당연합니다. 창피한 거 아닙니다. 제가 목사가 아니라 선생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두 목사 부부의 정 집사 셰프 만들기

김 목사는 한 명의 교인을 위해 ‘문산교회학교’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첫 지시가 “남편과 아들딸에게 ‘배꼽 인사’하고 학교로 오세요”였습니다. 다행히 정 집사는 따라주었고요. “그렇게 인사하고 나오니 정말 학생 같았다”고 정 집사가 회상했습니다.

“‘맑은 물’ 아시죠? 그럼 정수는? 자외선과 적외선, 버터와 치즈의 차이는?”

“그게 뭐드래요.”

“집사님, 그러면 앞으로 시험보지 말고 공부부터 하는 겁니다.”

겨울 농한기 ‘절임배추’ 출하가 끝나고 하루 4차례 시간을 정해 공부가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모의고사를 봤죠. 음…40점대.

“목사님, 저 같은 돌대가리는 안 돼요. 농사나 지을래요.”

김 목사와 이은미 사모는 ‘버터와 치즈’를 사다 보여주고 맛을 보게 했습니다. 김 목사는 아예 필기시험을 직접 봐 합격까지 했죠. 가르치기 위해서 시험 봐본 거죠. 하지만 정 집사 성적은 오르지 않습니다. 성격 급한 김 목사님, “내가 집사님 때문에 환장하겠습니다”라고 말하기라도 하면 정 집사는 옥상에 올라가 우네요.

다행히 정 집사가 ‘집중 공부’에 따라줘 기출문제 풀이에서 80점대도 나왔습니다. 다시 시험에 도전. 강릉 시험장에서 치러진 ‘대첩’이었죠. 근데 50점대였습니다. “너무 떨려 전날 잠을 못 잤다”가 이유였습니다. 전·후임 목사 부부와 식구들 보기가 부끄러워 죽고 싶은 정 집사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도전, 도전…2013년 초 12번째 시험을 봤습니다. 정 집사는 소망어린이집 조리실서 보조 일을 하다 합격 여부를 전화로 확인했습니다.

‘수험번호 ○○○번님 합격입니다.’

심쿵(심장이 쿵쾅쿵쾅거린다는 신조어). 정 집사는 주변 권사님 등을 끌어안고 팔짝팔짝 뛰었습니다. 그래도 믿기지 않아 아들에게 인터넷으로 점수 확인을 요청했어요. 82.16점의 높은 점수. 11전 12기였습니다. 이어진 실습은 한 번에 합격. 실습도 10명에 3명 정도 합격할 만큼 어렵거든요.



“맛있게 먹었습니다”… 행복해 죽을 것 같다

지난 23일 소망어린이집 조리실에서 ‘불굴의 정의녀 집사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큰 복을 주셨어요. 전·후임 목사님 부부, 어린이집 원장님, 남편과 식구들이 저를 너무너무 사랑해주셨어요. 아이들이 제가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고 배꼽 인사를 합니다. 행복해 죽을 것 같아요. 음식 나누듯 하나님 사랑을 나눌 거예요.”

정 집사는 지난 3월 4일자로 소망어린이집 정직원이 됐습니다.

탈의실 사물함에 자신의 얼굴 사진과 함께 ‘조리사 정의녀’라고 붙어 있습니다. ‘하나님 특급 호텔의 셰프’가 정 집사입니다.

영월=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