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커플처럼 보이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말다툼하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다. 여학생은 날 선 목소리로 남학생을 몰아붙였고, 무슨 잘못을 했는지, 여학생보다 키도 훨씬 크고 몸집도 건장한 남학생은 마치 교장선생님의 말씀이라도 듣는 듯 풀이 죽은 채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곁눈질로 구경하던 나는 그 장면이 재밌어서 버스가 좀 늦게 오기를 바라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남학생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갑자기 화를 내면서 주먹이라도 들이댈까봐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두 사람은 금세 다시 다정해졌다.
통계에 의하면 60대 남자도 체력적으로 가장 강한 시기인 20대 여자보다 평균 근력이 1.5배 정도 더 강하단다. 물론 개인차는 있을 것이다.
솔직히 나는 사춘기 무렵부터 남자애들에게 동물이 자기보다 강한 존재에게 느낄 법한 본능적 두려움을 가졌다. 그때부터 남자애들은 나보다 몸집도 크고 힘도 세 보였으니까.
여자와 남자 사이의 문제는 사회적 공적 관계가 아니라 친밀한 사적 관계로 만날 때 더 복잡해지는 것 같다. 개인적 예외성이 개입되기 쉽고, 육체적 친밀함이 순식간에 심리적 거리를 좁히게 되기 때문이다.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은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부정적 측면도 많다. 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 구별이 안 되는 상황에서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자기혐오가 투사되고, 일이 잘못되면 모두 네 탓이라는 비난을 하게 된다. 또한 육체적 친밀함은 쉽게 육체적 폭력으로 전이되기 마련이다.
그런 관계에서는 누가 먼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잘잘못과는 상관없이 물리적으로 힘이 약하고, 사회적 통념에 의해 열등하다는 차별을 받는 사람이 일방적 피해자가 되기 쉽다.
피해자는 갈등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내하고 굴종하게 된다. 폭력이 일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부희령(소설가)
[살며 사랑하며-부희령] 여자와 남자
입력 2015-06-26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