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 똑바로 보자] 경증 환자 거부할 수 있는 法개정 필요

입력 2015-06-25 02:50

지난 22일 오후 9시30분쯤 서울 종로구의 한 2차 의료기관 응급실은 한산했다. 병상 9곳엔 환자 2명만 누워 있었다. 뜨거운 욕조에서 나오다 현기증을 느꼈다는 20대 남성이 구급차로 실려 왔다. 간호사는 체온을 잰 뒤 이상이 없자 침대에 눕히고 진료를 시작했다. 대형 병원에서라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는 과정이 10분 안에 이뤄졌다. 이 병원 관계자는 “응급실 과밀화는 상급종합병원 얘기다. 맛집에 사람 많은 것과 같다”고 했다.

보건복지부의 지난해 조사에서 서울대병원(175.2%) 경북대병원(154.0%) 서울보훈병원(138.5%) 삼성서울병원(133.2%) 전북대병원(130.7%) 등 응급실 과밀화지수가 100%를 넘는 병원 10곳 중 9곳은 3차 병원이었다. 환자가 응급실 간이침대, 의자, 바닥 등에서 기다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런 병원의 응급실 환자는 모두 응급환자일까. 2012년 한국소비자원 조사 결과 응급실 이용자 중 비응급환자 비율은 40%에 육박했다. 이러다보니 환자를 응급과 비응급으로 가려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소위 ‘빅5’ 상급종합병원(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에서는 이런 현상이 특히 심각하다.

이런 속사정이 깔리면서 응급실은 본래의 기능을 잃고 있다. 지난해 중증응급환자가 응급실에 머문 평균시간은 전년 5.9시간에서 6.3시간으로 늘었다. 10시간 이상 걸리는 병원은 총 20곳에 이른다. 서울보훈병원이 37.3시간으로 가장 길다. 이어 부산백병원(18.5시간) 전북대병원(17.0시간) 등이다.

경증 환자와 중증 환자가 뒤섞여 대기하면서 중환자 상태를 악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 병원들이 응급실과 다인실 병상을 계속 늘리면서 침대 사이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 등 병실 환경도 열악해지고 있다. 메르스의 병원 내 감염이 활발했던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대형 병원 응급실 과밀화를 해결하려면 보다 엄격한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현영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진료의뢰서는 1차, 2차 병원에서는 치료가 힘든 중증이라는 판단을 거쳐 발급돼야 하는데 환자가 ‘원하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병원경영연구원 이용준 연구실장은 “입원을 원하는 경증 환자를 거부할 수 없는 현행 의료법을 손볼 필요도 있다”고 했다.

의료서비스의 시장기능을 강화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 실장은 “비응급환자의 응급실 이용에 대한 보험급여를 제한하고 있지만 충분한 억제 수단이 못 된다”며 “의료기관 급별 가격 차별화를 통해 경증 환자의 본인비용부담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수민 홍석호 김판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