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사과 안팎] “사죄” “참담” “통감”… 두 차례 90도 숙여

입력 2015-06-24 02:2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에서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국민 여러분께 큰 고통과 걱정을 끼쳐드렸다”고 사죄하며 “삼성서울병원을 대대적으로 개혁하겠다”고 말했다. 이동희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3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과 관련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은 삼성그룹 차원에서 그만큼 사태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으며 깊이 반성한다는 뜻을 분명히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 부회장이 지난달 삼성서울병원을 운영하는 주체인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이사장에 선임되면서 공식적으로도 병원 운영의 최고책임자 자리를 맡고 있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재단 이사장이자 그룹 사령탑으로서 확실히 책임지고 직접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 부회장은 사과문을 직접 낭독하며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확산의 진원지가 된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메르스와 같은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각종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삼성서울병원 의료체계도 확실히 혁신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이 공식석상에 나와 사과문을 낭독한 것은 1991년 12월 삼성전자에 사원으로 입사한 이후 처음이다.

엄중한 상황을 인식한 듯 이 부회장은 사과문에서 ‘머리 숙여 사죄한다’ ‘제 자신 참담한 심정’ ‘책임을 통감’과 같은 어구를 반복했다. 사과문 발표 시작과 말미에는 직접 허리를 90도로 숙여 정중히 유감의 뜻도 표시했다. 메르스 환자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지고 치료해 드리겠다”고 호소했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서울병원을 통해 메르스에 감염되거나 피해를 입은 분들에 대한 치료와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며 “조만간 그룹 차원에서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에 대해서는 열악한 진료환경을 개선하고, 메르스 대응이나 노출자 관리에 일부 빈틈이 있었던 부분을 철저히 조사해 재발방지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은 구체적으로 ‘응급실을 포함한 진료환경 개선’ ‘음압병실 추가 확보’ 등을 약속했다. 감염질환에 대한 백신과 치료제 개발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과 관련된 분야에서 세계적인 의료기관이나 연구소를 지원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와 관련,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은 “메르스 사태가 수습된 후 외부 전문가를 포함하는 쇄신위원회를 만들어 위기관리 시스템을 전면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이날 회견이 예정된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 오전 11시 정각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색 정장에 푸른색 계열의 넥타이를 맨 이 부회장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자신을 둘러싼 카메라를 통해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이어 담담한 목소리로 준비된 발표문을 읽어내려 갔다. 아버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년 넘게 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환자 분들과 가족 분들께서 겪으신 불안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는 잠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어떤 식으로든 국민에게 직접 사과를 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사과문 발표 시기를 고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이날 만 47세 생일을 맞은 이 부회장은 사과문 발표를 앞두고 며칠간 그룹 수뇌부와 직접 발표문을 가다듬은 것으로 전해졌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