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분쟁을 계기로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3일 ‘상장 활성화를 위한 상장사 제도 합리화 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상장기업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복수의결권 주식제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엘리엇 사태에서 드러난 것과 같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국내 기업의 방어 수단이 미흡해 기업들이 상장을 기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이번 기회에 경영권 방어 수단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
복수의결권 주식은 1주에 1의결권이 부여되는 것과 달리 1주당 10의결권 등 복수의 의결권이 부여된 주식을 뜻한다. 이 제도를 도입한 대표적 기업은 구글이다. 구글은 2004년 상장 때 1주당 1개의 의결권이 있는 클래스A 주식과 1주당 10개의 의결권이 인정되는 클래스B 주식을 함께 발행한 뒤 시장에 공개하지 않은 클래스B 주식 지분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경우에는 홍콩거래소가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지 않자 지난해 미국에 상장했다. 한경연은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신주를 매입할 수 있도록 미리 권리를 부여하는 포이즌필(Poison Pill·독약조항) 도입도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우리도 이제 투기자본의 경영권 침탈 시도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2000년대 들어 소버린자산운용, 헤르메스, 칼 아이칸이 SK, 삼성물산, KT&G의 경영권을 위협했을 때 해당 기업들은 총성 없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이처럼 외환위기 이후 국내 자본시장이 개방돼 투기자본 공격이 심심찮게 이뤄지고 있으나 우리 기업들은 이를 막을 방패가 없다.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들이 포이즌필 등을 도입하고 있는 것과도 비교된다. 우리도 이명박정부 때 포이즌필을 도입하려 했으나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공격과 방어 수단이 균형을 이뤄야 공정한 승부가 가능한 법이다. 오너가 소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후진적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문제와는 별도로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이 재검토돼야 하는 이유다. 더 이상 우리 기업이 사냥꾼들의 먹잇감이 돼서는 안 된다.
[사설] 지배구조 개선과 별도로 경영권 방어수단도 필요
입력 2015-06-24 00:38